6page

2017년12월31일 일요일 6 (제132호) 관향조 종친회 조선초 숭정대부(崇政大夫) 이조판서 (吏曹判書)를 거쳐 홍문관 대제학, 지경 연 춘추관사(知經筵 春秋館事)를 역임하 고 문효(諡號 文孝)의 시호(諡號)가 내 려진 휘(諱)안례(安禮)이하 10대(代)1 5위(位)의 시제(時祭)가 지난 2일(음10 .15) 전남 순천시 상사면 쌍지리 소재 세 장산 아래의 운곡정사(雲谷精舍)에서 본 손과 방계 후손인 도원재 휘 세희(좌승 지)의 후손들이 경기도 화성에서 대거 참 석하는 등 50여명이 참례한 가운데 병호 집례(순천 신월)의 창홀에 따라 효성(순 천 상사), 도열(경기 화성, 도원재 종손), 정만(여수 율촌) 현종 순으로 각각 헌작 하고 병구(순천 해룡)축관의 독축으로 4 0여분에걸쳐엄숙봉행되었다. 이날 봉행된 제례는 판서공파조 휘 안 례, 14世, 15세 휘 하, 16세 휘 기, 17세 휘 양선,18세(휘 윤문),입향조인 19세 운곡 공 휘 증 손 , 2 0 세 휘 기 븡매 , 2 1 세 휘 대 조 븡 대붕 22세 휘 민홍, 23세 휘 근, 간 24세 희훈, 희열 공(公)으로 위 세(世)는 사벌 국왕으로부터이다. 제례가 봉행된 운곡정사는 판서공의 5 대손 도원재(道源齋)휘 증손(曾孫 號 雲 谷)이 낙향하여 향리의 자제들을 모아 도 학을 연구하고 강학한 곳으로 도원재공 은 관례(冠禮) 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 으나 공명(功名)과 영진(榮進)을 멀리하 고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서울에서 전 남 순천의 운곡촌에 이주 은거하며 후학 을 양 성 일 세 (一 世 )의 사 표 ( 師 表 )가 되 었다. 지금의 순천지역 판서공 후손들은 운 곡정사를 중심으로 순천, 여수, 광양으로 세거지를 이루면서 큰 집성촌을 이루며 위선사업과 선영봉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운곡정사 주변에는 도원재 박세희 선 생이 배향된 이천서원이 있어 그의 후손 들은 경기도 화성지역에 세거하고 있으 나 매 년 운 곡 정 사 향 사 에 매 번 참 석 하 여 일가간정을나눈다.도 원재 휘 세희(世喜 號 道源齋)는 중종9 년(1514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정암 조광조와 동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 한(典翰)이 되고 호당(湖當)에 선임, 홍 문관 부수찬(弘文館副修撰), 교리(校理) 를 거쳐 이조좌랑(吏曹佐郞)사헌부지평 (司憲府持平), 지제교(知製敎)를 거쳐 여러 관직을 지냈으나, 1519년(중종14) 좌승지(左承旨)로 기묘사화(己卯士禍) 에 연루되어 강계(江界)로 유배되었다가 배소에서 생을 마쳤다. 이조판서에 추증 되고 시호는 문강(諡號 文剛)을 내렸으 며 경기 화성의 안곡서원에도 배향되어 있다. /박정홍명예기자(전남순천시) 상주(상산)박씨판서공파(운곡정사)시제 봉행 도원재공후손대거참례 운곡정사제향광경. 운곡정사제향제관(왼쪽부터효성, 도열, 정만, 병구, 병호順 이하 右執事병구, 철수, 병길. 左執事원 근,유근,형근) 입향 이후 500여년을 이어오며 조상의 위업을 숭상하는 숭고한 정신과 경로효 친의 바탕위에 토반(土班)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해온 밀양박씨 경산문중의 201 7 정유(丁酉)년 가을 시향이 지난 달 27 일(음10.10)~28일까지 경북 경산시 진량 읍 현내리, 마곡리, 속초리, 다문리 선영 에서각각봉행되었다. 이번 시향(時享)에는 다소 추운 날씨 에도 후손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선조 의 유훈을 잇고자 많은 후손들이 참례한 가운데 첫날인 27일 봉사(奉事)를 역임 한 경근당(휘 根孫)과 성균생원 지암공 휘 빈(彬)父子와 경산 입향조 요산공(樂 山公) 휘 운달(雲達), 송재공(松齋公)휘 근손(謹孫) 부자의 제례가 차례대로 현 내리와 마곡리 선영에서 △초헌관 병대 △아헌관 계정 △종헌관 순휘 △축 철수 △집례 병홍 현종이 각각 소임을 맡아 봉 행되었으며,둘째 날인 28일은 정재공(貞 齋公) 휘 번(蕃), 죽고공(竹皐公) 휘 응 득(應得) 부자의 제례는 마곡리와 다문 리 선영에서 죽고공의 11대손 방무(方 茂)의 집례로 병대 종손의 초헌례에 이어 병암, 경호 현종이 아헌과 종헌으로 헌작 하고철수현종의독축으로이어졌다. 경근당(敬謹堂, 휘 근손)공은 봉사(奉 事)를 지냈으며 부인(配位) 진성이씨는 퇴계의 왕고모이기도 해 후손들은 퇴계 학맥을 잇기도 하였으며, 아들 빈(彬)은 성균생원이고, 손자 요산공(樂山公, 휘 운달)은 1491년 3월 12일 태어나 1516년 무과에 등제 후 여러 차례 승진하여 선전 관사 포서별검 봉상시주부(종6품)에 이 르렀고 직분을 받듦에 공정하게 처리했 다. 그리고 아첨하거나 물러나는 태도가 전혀 없어 동료들이 모두 공경하면서 꺼 려했다. 이후 “벼슬은 나의 학문을 펼치 고 나의 뜻을 행하여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못하 다.”고 하고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호서 (湖西)의 청주로 물러나 살면서 경전에 힘써서 그 앎을 지극히 하였고 자신에게 돌이켜실천하였다. 뒤에 또 다시 영남의 자인현 대원리(현 진량읍 대원리)로 옮겨 은거하며 삼족당 김대유와 소요당 박하담 선생등과 교유 하며 성리(性理)를 탐구하는 등 오직 책 만을가까이하였다. 입향 이후 아들 근손(謹孫, 號 松齋)은 성균생원으로 4남을 두었는데 장남 총 (叢)은 일찍 사망하였고, 차남 번(蕃)은 무과에 급제하여 태천현감을 지냈고, 승 정원좌승지 경연참찬관에 추증되었으며 후손들은 진량읍 다문리와 대원리, 삼남 란(蘭)의 후손은 압량면 당리, 사남 포 (苞)는 문장과 행실이 뛰어났으며 후손 들은 진량읍 속초리에 세거지를 정해 이 금에 이르기까지 토반으로서 책임과 의 무를 다하고 있어 타 성씨의 모범이 되고 있다. 특히 차남 번(蕃)의 아들 응득(應得, 號 竹皐)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혁혁 한 공을 세웠으며, 1606년(선조39) 29세 에 무과에 급제하여 권지훈련원참군(정7 품)이 되고 이후 요직을 거쳐 1633(인조1 1) 절위장군용양위상호군(정3품), 1634 년(인조12)가선대부로 승차하여 3대 추 증이 되어 아버지(휘 蕃)는 가선대부 병 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 관,조부(휘 謹遜)는 통정대부 호조참의, 증조부(휘 雲達)는 통정대부 통례원 좌 통례로각각추증되었다. 1636년(인조14) 12월 10일 청태종이 1 0만 대군으로 서울근교에 육박하자 인조 가 남한산성에 피신 할 때 호종하여 산성 으로 들었으나 청군이 산성을 포위한지 4 5일 만에 주화론에 따라 인조가 삼전도에 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자 주전(主戰)을 주장하다 이에 미치지 못하자 벼슬을 버 리고 향리로 돌아와 은거하며 후진양성 에 매진하다 3년만인 1639년(인조17) 별 세, 가정대부 병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에추증되었다. 한편 이날 제향 후에는 마곡리와 다문 리 선영에 모셔진 죽고공의 아들(휘 종 립) 손자(휘 진영)증손(휘 인창), 현손 (휘 이정)의 묘소를 찾아 각각 참배하면 서 정 유 년 시 향 (時 享 ) 을 마 치 고 , 각 각 사 문중제향에정성을다했다. /박방무명예기자(경북경산시지부) 밀양박씨참판공파경산문중시향봉행 참판공의손자휘근손(根孫)을비롯6世,입향조휘운달(雲達)청주에서 이 거 후 증 손 응 득 (應 得 ) 귀 ( 貴)로 인 해 3대 추 증 (追 贈) 다문리죽고공묘역제관(사진왼쪽에서두번째부터철수축관, 경호종헌관, 병암 아헌관, 방무집례, 병대초헌관 병식총무,용정원로고문順) 현내리선영에서입향조(휘운달)묘소제향광경. 사)노계 박인로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진규)는 지난 19일 오전11 시 경 북 영 천 시 산 림조합 3층 회의실 에서 제4차 정기이 사회의를 갖고 201 7년 사업경과보고 와 △고 문 사 임 및 추대건 △이사 재 신임 및 감사 선임의 건 △신역 노계집 출 판기념회관 예산 건 △ 신역 노계집 배포 기준 △포상 건 △출장여비 규정 및 도서 관리 규정의 건 등의 안건을 상정하여 △ 박삼달 고문의 사임(사망)으로 후임 고 문에 한명동 현연계서원원장,박영태전 영천시박씨종친회장을 추대하고,박경해 현자문위원을 이사로, 박순묵 청도군문 화해설사(밀직부원군 后)를 자문위원으 로,현박진규이사장을비롯한이사 전원 을 유임키로 하고 조형제 회계학박사(어 계 선생 29대손), 서동혁 前 도청간부를 감사로선임했다. 그리고‘신역노계집’발간에따른출판 기념회를 2018년 1월 25일 영천 ‘스타컨 벤션 홀’에서 갖기로 하고 예산 4백만원 을 편성하였으며,노계집 판매가는 3만원 으로 하되 임원진과 주요언론기관, 종합 대학도서관등은무료배포키로하였다. 한편 이날 회의에 앞서 박진규 이사장 은 인사말을 통해 ‘신역 노계집’ 발간 과 정을 소개하고 현재 북안면 도천리 노계 서원입구에건립되고있는노계가사문학 관이 공정율 80%를 보이고 있다고 소개 하고많은관심을가져줄것을당부했다. 노계 박인로 선생기념사업회는 2013년 노계 박인로 선생의 문학과 삶을 복원하 여그 감동과 가치를 나누고,더불어 선생 의 우국충정과 효행도 이 시대의 귀감으 로 널 리 선 양 하 는 것 을 목 적 으 로 발 기 하 여, 2015년 9월 14일 경상북도로부터 ‘사 단법인 노계박인로기념사업회’로 허가 받아 법원 등기를 완료한 비영리 법인으 로 조선시대 주옥같은 가사·시조·한시 작품을 남긴 노계의 문학을 현대적 관점 에서 재조명하고, 성·경·충·효(誠·敬·忠 ·孝)를 실천하려고 노력한 무인·문인·예 인이었던 노계 선생의 삶을 계승 발전시 키는사업을추진하고있다. 박인로(朴仁老, 1561~1642)는 경상북 도영천 출신으로,가사 문학의 정수를 보 여준 무인 겸 문인가객이다. 본관은 밀양 이며 밀직부원군 후 청풍당 박영손의 현 손이다.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 또 는 무하옹(無何翁)으로 그의 생애는 크 게두 부분으로 나눌 수있는데,초반에는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고, 후반에는 독서와 수행으로 초연했던 선비와 문인 가객으로서의 면 모가 지배적이다.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 서 어려서부터 독실근학(篤實勤學)하여 열세 살에 븮대승음(戴勝吟)븯이란 시를 지 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으나, 출세 영달 에는 뜻을 두지 않고 가난한 선비로서 안 빈낙도하며 인격을 수양하고 인간의 정 도를추구하며살았다. 노계박인로기념사업회제4차정기이사회의 열려 ‘신역노계집’출판기념회일정등안건처리 박진규 이사장이 인사 말을하고있다. 밀양박씨 규정공 후 해백공파중앙종 친회(회장 봉래) 2 017년도 임시총회 가 지 난 6 일 수 요 일 오후1시 대전 동구 정동 철도공사 회 의실에서 대의원 3 6명이 참석한 가운 데 대 령 총 무 이 사 의 사회로 성원보 고, 개회선언, 국민 의례, 회장인사, 전 차회의록 낭독, 종 무보고에 이어 세 입세출 예산안을 상정 원안대로 처 리하고 임원개선에 있어 △ 회장 성율 △감사 대진, 종문 현종을 선출하고 △부 회장 및 이사 선임은 신임회장에게 위임 키로 하는 등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 기속에서성황리에마쳤다. 한편 봉래 회장은 회의에 앞서 부족하 고 노쇠(老衰)한 몸으로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기쁘다며 성원해준 종원여 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종사는 적극적인 참여와 봉사정신으로 무장되어 야한다며참여와봉사를당부했다. 신임 성율 회장은 1952년 충남 부여에 서 태어나 학군장교로 복무한바 있어 행 정과 사무에 밝고 해백공파 부여문중 총 무 등 대소 문중의 중요직책을 40여년 보 아와 이날 대의원 만장일치로 추대되어 향후 3년간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게 되어 해박한 종사지식을 통해 종중을 크 게발전시킬것으로기대하고있다. 성율 회장은 이날 수락인사를 통해 많 은 것이 부족하고 미력하지만 최선을 다 해볼것이라며지도편달을당부했다. 해백공파 중앙종친회는 규정공파의 소 파이다. 1465년(세조11)에 태어나 1483 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485년(성종16) 별시에서 3등으로 급제 한 휘 소영(召榮) 을 파조로 하고 있으며, 종무를 이사회와 대의원회의 2원 의결기구를 통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운영하는 등 선진화 된 종친 회로널리알려져있다. △신임박성율회장프로필 1952년(호적) 충남 부여 출생/ 알파정 밀 대표 ◇경력 : 해백공파 부여문중 총 무,해백공후도사공파총무,수석부회장 (현),해백공파감사,총무이사,총무부회 장(현),규정공파대종회 대의원,이사,총 무이사, 밀성박씨대종회 이사, 감사, 박 씨 중앙청년회 사무처장, 오릉보존회 서 울특별시본부 이사, 문화이사, 사무처장 (현), 밀원문화연구회 총무이사, 부회장 (현) /박현배 명예기자(서울특별시본부) 밀양박씨해백공파중앙종친회임시총회성 료 신임회장박성율부회장추대 박봉래회장 박성율 신임 회장 밀양박씨 경산문중 숭조당 시향이 지난 3일(음10.16)재균 집 례의 집전으로 석창 초헌관의 초헌례와 필영,청길 현종의 아헌 과종헌,창균축관의독축으로엄숙봉행되었다. 숭조당(崇祖堂)은 2006년 석천공을 비롯한 선조 묘역이 있던 경산시 진량읍 신제리 일대가 진량 제2차지방공단부지로 개발 편입되어 기존 분묘를 부득이 이장하여야 하게 된 차에 분묘설 치에 의한 자연훼손을 막고 후세에 물려줄 금수강산을 보전하 며 정부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진량읍 속 초리 소재 석천정(石泉亭)에서 모여 유골과 위패를 봉안 할 숭 조당건립을논의했다.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은 청길 현종을 비롯한 위원들은 경향각 지의 우수 납골당, 재실, 숭조관련 건출물, 조형물 등을 현지답 사하고 전문가를 찾아 자문을 얻으며 당대에 가장 훙륭한 숭조 당 건깁을 위해 각자의 소임을 다한 결과 대지 593.00㎡(180평) 건물 96.66㎡(30평)에 정면 4칸 측면 3칸 전통식한옥으로 256실 의안치실을갖춘숭조당을2007년 4월 착공하여 같은 해 11월 1 7일석천공향사일에맞춰준공을갖게되었다. 숭조당에는현재가실31실58위,나실33실62위,다실23실3 7위 라실 24실 33위 등 전체 111실 190位의 위패와 유골이 봉안 되어 있어 제례일이면 전국의 후손들이 선조의 음덕을 기리며 후손간정을나누는친목의장이되고있다. 석천공 휘 특립(石泉 휘 特立)은 경산입향조 휘 운달(雲達) 의 아들 근손(謹孫)의 사남 포(苞)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학행 (學行)으로 명성을 떨친 죽와(竹窩)공 휘 계득(繼得)으로 公 은차자(次子)이다. 1592년(선조 임진)에 태어나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는 쌀·국 수·술·간장·기름·꿀·채소·과일 등의 물자를 공급하고, 연회와 직조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내자시(內資寺)봉사(奉事)를 지 냈다. /박방무명예기자(경북경산시지부) 밀양박씨규정공后경산문중송조당(崇祖堂)시향 봉행 선조190位위패봉안 석천정(左)과 숭조당전경. 지난 3일 60여명의 후손들이 참례한 제향은 오랜만에 만난 일가들의 친목 의장이 되었다. 안치실전면<왼쪽>과 안치실내부.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