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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으로 頭髮은 總훨環졸이며, 모자는 새 깃으로 보이는 벚毛가 달린 ~~을 쓰고 있 다 다른 2A 중에서 정확하게 보이는 인물은 쏠形의 뼈에, 옷은 옆이 트인(缺陣) 團領 을 입었다 모두 剛를 신고 있다 이들의 복식은 만약 이들이 관직자라면 입은 옷은 公 服이거나 常服일 것이다 고려의 官服制는 洪武 3년(137이에 정하는데 常服에는 모자는 烏沙11’릅로, 옷은 黑團領에 束뿜를 하도록 하였다. 福王 13년(138끼에는 문무관 및 각처 州縣의 下級I熾까지도 胡服을 고쳐 明制를 따르도록 하였다. 본 벽화에 나타난 인물은 관직자의 복식과는 맞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을 관직자가 아니고 이 지역의 民應층으 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시기 관복은 官制로는 明制를 따르고 있었지만 元복속기를 벗 어나지 않았을 시기라고 볼 수 있으며, 물론 元服屬期 동안 상층사회에서는 지켜졌을 것이지만 民많까지는 강요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복식을 통해볼 때 國倚 위에 胡服없Ij와 明밟Ij가 공존하고 있다. 여성들의 복식에서 髮式은 雙훨環 또는 寶童環뿔를 하고, 정수리에 연꽃형의 장식물 을 얹었는데 冠처럼 머리에 쓸 수 있는 형상이 아니다. 만약 그냥 꽃을 얹었다면 動作 하기에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冠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지만 일단 花節冠으로 본다. 옷은 여성들의 일반적인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있다. 치마는 전형적인 우리 나라 여성 의 下衣이며 上代부터 지금까지 입어오고 있다. 저고리는 옆이 트인 것으로 판단되는 데 이는 조선 前期 여성들이 입었던 上衣이며, 이 옷은 後代로 내려오면서 소매와 품 이 좁아지고 상대적으로 앞과 뒤의 길이가 긴 조선 후기 居衣의 전신인 셈이다. 신은 일반적인 群를 신고 있다. 본 벽화의 복식은 당시 국내외 상황을 볼 때 中原의 여러 나라와 교류하면서 그 영 향을 일부 받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國倚 위에 元代와 明代의 복식을 겸한 혼합형태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끝으로 이 벽화에 나타난 인물들의 性別에 대한 문제를 과제로 둔다. 벽화에 나타난 남성들은 중국의 예처럼 얼굴의 윤곽이나 분위기로 보아 男裝女A일 수도 있다. 이렇 게 본다면 여기에 동원된 인물들은 전부 여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며, 당 시 시대상과 風倚을 연구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