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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익 묘의 동벽과 서벽에 이러한 매죽석도(梅竹石圖)가 등장하게 된 것은 아마도 묘 주인 박익의 충절(忠~íJ)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박익은 고려말의 충신으 로 포은(團隱) 정몽주, 목은(收隱) 이섹, 야은(治隱) 길재 퉁과 함께 호에 은(隱)자가 들 어간 8은 중의 한명이며, 고려의 사직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 포은, 목은, 야은 등과 통 독하면서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신하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거나 “냐 또한 왕씨의 신하이니 맹세코 이씨(이성계)의 곡식은 먹지 않겠노라”라고 다짐했을 정도로 충절이 굳건한 성리학자였다.14)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그의 무덤 안에 매화와 대니무와 바 위가 그려진 것은 그의 고려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 이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매화와 대나무는 그의 청절을, 바위는 불변의 의지를 상징하 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동벽과 서벽의 대나무와 매화와 바위가 어쩌면 그가 앉은 모 습으로 그려져 있었을 북벽을 향하여 한결같이 절하듯 기울어져 있는 모습도 그의 변 함없는 충절을 기라고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고 추측된다. 무덤 안에 이처럼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와 매화를 그려 넣은 사례는 중국이나 일 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직 고려 초의 태조 왕건의 능과 정종(定宗) 의 능 등 10세기의 왕릉에 그려진 벽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25) 왕건츰의 서벽에는 매화와 대나무가, 동벽에는 소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이 셋을 합쳐 세한3우(歲寒三友)라 고 하는데 추운 겨울에도 푸르름이나 향기를 잃지 않으므로 선비의 청절을 상징한 다 26) 특히 왕건릉 서벽의 매화와 대나무 그림은 박익 묘의 매죽석도와 상징성에 있어 서 일맥 이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圖28). 그러나 화풍변에서는 두 고분의 벽화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즉 박익 묘의 벽화에서는 대나무를 그림에 있어서 한번의 붓질로 잎파리 하나를 그리는 일필 일엽식의 표현을 하고 있는데 비하여 왕건릉의 대나무는 쌍구법(雙對法)으로 묘사되어 있다. 줄기나 대잎을 그림에 있어서도 두 개의 윤곽선을 구사하여 묘파하고 있는 것이 다. 이 쌍구법은 고대의 화법으로서 보다 전통적이며, 고려 후기의 수윌관음도(水月觀 흡圖)들의 배경에 그려진 대나무들은 거의 예외없이 쌍구전채법(雙짧휠彩法)으로 되어 있다. 일필일엽식의 묵죽도(뿔竹圖)는 북송대의 소식(蘇빼(호는 東城)과 문동(文同) 둥 24) r國譯 松隱先生文集J , pp.318- 319 참조. 25) 김영심, 「고려태조 왕건왕릉벽화에 대하여J r조선예술J (1993, 11), pp.52,53 참조. 26) 안휘준, 「한국 회화의 이해J ,pp.60- 62, 圖10,11 참조‘ - 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