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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활동하던 일류 화가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방의 화가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지만 구체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동벽과 서벽의 인물들은 대부분 무엇인가 들거나 이고 있다. 대체로 여자들은 끈이 달린 그릇이나 병, 잣잔 등의 기명(器血)이나 모자, 판(板) 등 공양에 도움이 될 물건들 을 지니고 있다 반면에 남자들은 동2군의 그림에서 보듯이 붉은색의 T자형 주장(朱까) 을 들고 있어서 의식에 필요한 물건들을 들었던 것으로 여겨진다(圖13) 그렇다면 이 고분의 동벽과 서벽의 인물들은 묘주인 박익을 위한 공양이나 제례(察피뿔에 소용되는 기명이나 의구(1'義具)들을 들고서 북벽에 정좌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박익을 향해 서 가고 있는 형상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처럼 박익 묘의 벽화는 개성과 그 부근에 위치한 12지신상 위주의 고려시대 고분벽화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익 묘의 벽화에 보이는 기물들에 관해서는 앞으로 철저한 고찰 과 규명이 요구된다. 2. 남벽 남벽에는 동서, 좌우에 각각 한필의 말과 말의 고삐를 잡고 있는 따부 I명씩이 대칭 을 이루며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圖4). 마부들은 동벽과 서벽에 보이는 남자들과 는 달리 단령이 아닌 직령(直領)으로 된 포를 갚게 여며서 입고 허리띠를 매었으며 화 (¥삐를 신고 있다. 두명의 마부 모두 꼭대기에 장식이 있는 몽고풍의 발립(錄쏠)을 쓰 고 있다 말이나 마부의 자세와 동작이 매우 자연스럽다. 전체적으로 표현이 숙달된 솜씨를 드러낸다 철선묘를 구사한 전형적인 백묘화이다 필선은 가늘고 날카롭다 이처럼 남 벽의 벽화는 동벽과 서벽의 벽화들에 비하여 보존상태가 훨씬 양호텔 뿐만 아니라 표 현기법과 솜씨도 한층 뛰어나다. 아마도 남벽의 벽화는 동벽과 서벽을 그린 화가와는 다른 화가가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쩌면 동벽과 서벽의 인물들을 한명의 화가 가 담당해서 그리고 솜씨가 더 나았던 또다른 화가가 남벽과 북벽의 벽화를 그렸을 가 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이 두명의 화가들이 묵죽과 묵매, 당초문대와 벽돌문대까지도 그렸을지는 알 길이 없다. 적어도 인물화의 제작은 아마도 2명이 분답하여 완성했을 1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