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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시] 기다림 난, 저 멀리 하얀 눈밭에서도 붉게 빛나는 우아한 한 떨기 동백꽃이었다. 적어도 너희가 고무신 벗겨지도록 날 끌고 가지 않은 동안은... 꽃잎 한 점 바람에 내어주지 않은 채 붉은 빛깔 때 묻힌 한 점 흙빛도 없이 고고히 빛났다가 그 이름 동백꽃처럼 그렇게 툭 떨어지고 싶었다. 그런데, 호미랑 소쿠리 끼고 바래가던 날 힘없이 하늘 아래 난 너무도 참혹하게 꺽이고 말았다. 남의 땅 낯선 사람들 발길에 무참히 짓이겨지고 말았다. 평생 못 밟을 줄 알았던, 어린 나를 품어 키우던 땅에서 이제는 휘어져 버린 내가 가슴에 새빨간 동백꽃을 품은 채 기다리고 있다. 온 국민도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 그렇게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들랑 제발 허무맹랑한 메아리만이라도 들리게 하지 마라. 붉은 가슴 시꺼멓게 피멍이 들더라. 너희 심장 가장 낮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한 마디면 되는 것 아니더냐. 아무 준비 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너희도 손님이라고 이렇게 한 켠을 비워두었다. 늙고 쪼그라진 내가 기다린다고 쉽게 생각지 마라. 새파란 잎사귀 호위 아래 하늘 향해 붉은 꽃빛 자랑하던 청초한 한 떨기 동백꽃이 기다린다고 아파해라. 온 마디마디 눈물 박힌 채, 벗겨진 고무신 신는 것조차 사치였던, 한 점 티끌도 없이 창창히 빛나고 싶었던 어린 딸이 기다리고 있다고 아파해라. 일본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허울만 커다랗게 그리 오지 마라. 그저 한평생 서럽던 내 마음 따뜻한 가슴으로 훑어 내려 줄 그런 마음으로 오너라. 주먹 쥔 손이 펴지도록, 고무신 벗겨진 맨발이 따뜻해지도록 그렇게 오너라! 너희가 그 모습으로 올 때까지 내가 기다리마! 내 휜 그림자, 내 심장 속 흰나비가 훨훨 날아갈 때까지 기다리마! 꼭 오너라! 여기, 이렇게 꼿꼿이 기다리고 있을꾸마!! - 김향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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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시] 기다림 난, 저 멀리 하얀 눈밭에서도 붉게 빛나는 우아한 한 떨기 동백꽃이었다. 적어도 너희가 고무신 벗겨지도록 날 끌고 가지 않은 동안은... 꽃잎 한 점 바람에 내어주지 않은 채 붉은 빛깔 때 묻힌 한 점 흙빛도 없이 고고히 빛났다가 그 이름 동백꽃처럼 그렇게 툭 떨어지고 싶었다. 그런데, 호미랑 소쿠리 끼고 바래가던 날 힘없이 하늘 아래 난 너무도 참혹하게 꺽이고 말았다. 남의 땅 낯선 사람들 발길에 무참히 짓이겨지고 말았다. 평생 못 밟을 줄 알았던, 어린 나를 품어 키우던 땅에서 이제는 휘어져 버린 내가 가슴에 새빨간 동백꽃을 품은 채 기다리고 있다. 온 국민도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 그렇게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들랑 제발 허무맹랑한 메아리만이라도 들리게 하지 마라. 붉은 가슴 시꺼멓게 피멍이 들더라. 너희 심장 가장 낮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한 마디면 되는 것 아니더냐. 아무 준비 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너희도 손님이라고 이렇게 한 켠을 비워두었다. 늙고 쪼그라진 내가 기다린다고 쉽게 생각지 마라. 새파란 잎사귀 호위 아래 하늘 향해 붉은 꽃빛 자랑하던 청초한 한 떨기 동백꽃이 기다린다고 아파해라. 온 마디마디 눈물 박힌 채, 벗겨진 고무신 신는 것조차 사치였던, 한 점 티끌도 없이 창창히 빛나고 싶었던 어린 딸이 기다리고 있다고 아파해라. 일본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허울만 커다랗게 그리 오지 마라. 그저 한평생 서럽던 내 마음 따뜻한 가슴으로 훑어 내려 줄 그런 마음으로 오너라. 주먹 쥔 손이 펴지도록, 고무신 벗겨진 맨발이 따뜻해지도록 그렇게 오너라! 너희가 그 모습으로 올 때까지 내가 기다리마! 내 휜 그림자, 내 심장 속 흰나비가 훨훨 날아갈 때까지 기다리마! 꼭 오너라! 여기, 이렇게 꼿꼿이 기다리고 있을꾸마!! - 김향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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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시] 기다림 난, 저 멀리 하얀 눈밭에서도 붉게 빛나는 우아한 한 떨기 동백꽃이었다. 적어도 너희가 고무신 벗겨지도록 날 끌고 가지 않은 동안은... 꽃잎 한 점 바람에 내어주지 않은 채 붉은 빛깔 때 묻힌 한 점 흙빛도 없이 고고히 빛났다가 그 이름 동백꽃처럼 그렇게 툭 떨어지고 싶었다. 그런데, 호미랑 소쿠리 끼고 바래가던 날 힘없이 하늘 아래 난 너무도 참혹하게 꺽이고 말았다. 남의 땅 낯선 사람들 발길에 무참히 짓이겨지고 말았다. 평생 못 밟을 줄 알았던, 어린 나를 품어 키우던 땅에서 이제는 휘어져 버린 내가 가슴에 새빨간 동백꽃을 품은 채 기다리고 있다. 온 국민도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 그렇게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들랑 제발 허무맹랑한 메아리만이라도 들리게 하지 마라. 붉은 가슴 시꺼멓게 피멍이 들더라. 너희 심장 가장 낮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한 마디면 되는 것 아니더냐. 아무 준비 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너희도 손님이라고 이렇게 한 켠을 비워두었다. 늙고 쪼그라진 내가 기다린다고 쉽게 생각지 마라. 새파란 잎사귀 호위 아래 하늘 향해 붉은 꽃빛 자랑하던 청초한 한 떨기 동백꽃이 기다린다고 아파해라. 온 마디마디 눈물 박힌 채, 벗겨진 고무신 신는 것조차 사치였던, 한 점 티끌도 없이 창창히 빛나고 싶었던 어린 딸이 기다리고 있다고 아파해라. 일본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허울만 커다랗게 그리 오지 마라. 그저 한평생 서럽던 내 마음 따뜻한 가슴으로 훑어 내려 줄 그런 마음으로 오너라. 주먹 쥔 손이 펴지도록, 고무신 벗겨진 맨발이 따뜻해지도록 그렇게 오너라! 너희가 그 모습으로 올 때까지 내가 기다리마! 내 휜 그림자, 내 심장 속 흰나비가 훨훨 날아갈 때까지 기다리마! 꼭 오너라! 여기, 이렇게 꼿꼿이 기다리고 있을꾸마!! - 김향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