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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17년 8월 31일 (음 7월 10일) 목요일(신라기원 2074년) 전화:053-588-7300 제128호 12면(월간)뱚 인체파동원리 http://blog.daum.net/tongnamu79 손을 얹으면 아픈 곳이 낫는 보석체험, 추풍령 통나무연수원 븡펜션. 문의:010-2336-7852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고헌 박상진 의 사 순국 96주기 추모식이 15일 울산 북구 송정동박상진의사생가에서열렸다. 고헌 박상진 의사 추모사업회가 주관 한 이날 추모식에는 추모사업회 회원과 유족 등이 참석해 박 의사의 넋을 기렸다. 앞서 열린 추모제례는 박천동 북구청장 이 초헌관, 정복금 북구의회 의장이 아헌 관으로헌작제를올렸다. 박상진 의사는 조선말기인 1884년 12 월 6일 울산군 농소면 송정(현 울산시 북 구 송정동)에서 경주븡울산의 만석지기 승지 박시규와 여강 이씨의 장남으로 태 어났다. 16세가 되던 해 당시 학덕이 높은 왕산 허위(애국계몽사상가)의 문하에 입문하 여 정치와병학을배우게되고,그의 스승 이자 의병장 허위선생의 영향으로 명사 문객들과 교제하며 국제정세를 습득할 수 있었으며, 이 해 평해 의병장 신돌석 (申乭石)과의형제를맺게된다. 1908년 ‘양정의숙 전문부’를 졸업한 박 상진은 비밀결사조직 ‘신민회’에 가입하 여 활동했고, 1910년 판사등용시험에 합 격해 평양 지원에 발령까지 받았으나 결 국부임하지 않고만주와연해주,상해 등 지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느낀 것은 나라 잃은 뼈저린 아픔이었으 며, 일제에 대항하여 의병을 능가하는 군 사력과 군사조직을 위한 자금의 필요성 을 깨 닫 게 된 다 . 이 때 박상진은 계몽운동과 의병활동 을 통한 무력항쟁이라는 양대 전력을 구 상하게 되며,이를위해자금 조달이 필수 적이라생각했다. 1912년 박상진은 삼정물산에 전답을 저당 잡혀 빌린 자금으로 김기덕, 오혁태 와 함께(상덕태상회)라는 곡물상회를 대 구에 설립하여 겉으로는 무역업을 겸한 곡물상으로 속 내용은 독립운동기지 및 각종 연락기관, 자금조달기관으로 삼는 다.이후 수차례 중국을 방문했고,당시의 중국신해혁명을 본보기 삼아, 국권회복 과 공화제 실현을 목적으로 ‘대한광복회’ 를결성한다. 그의 나이 32세, 1915년 7월 15일이다. 대구 달성공원에서 조직된 대한광복회는 총사령으로 박상진이, 부사령으로 이진 룡이 임명되어 활동이 시작되지만, 이진 룡의 체포로 의형제 김좌진이 뒤를 잊는 다. 대구의 상덕태상회, 영주의 대동상회 를 비롯하여 광주, 삼척, 예산, 인천, 용 천,서울,해주 및 만주의 안동,장춘에 설 립된 곡물상, 잡화상을 연락거점으로 하 여 군자금을 모았고, 친일부호들과 금광, 세금수송 우편마차 등을 대상으로 하여 독립군자급을마련하였다. 1917년 겨울부터 1918년 봄까지 ‘대한 광복회’는 최대 수난기 및 ‘이종국’의 배 신으로, 결국 박상진은 체포되어 3년 6개 월의 옥살이 끝에 1921년 8월 11일 서른 여덟의 나이로 대구형무소의 교수대에서 순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박 의사는 올해 국방부 '8월의 호국인 물'로 선정됐으며, 국방부는 지난 3일 서 울 전쟁기념관에서 현양행사를 개최하기 도 했 다 . 북구 관계자는 뷺조국광복을 위해 헌신 한 북구 출신 박상진 의사의 뜻을 받들어 나라사랑 정신이 숨쉬는 북구를 만들어 갈수있도록노력하겠다뷻고말했다. /자료제공=울산북구청 대한광복회총사령관박상진의사96주기추 모제봉행 울산북구생가에서븣추모사업회주관 故박상진의사 고(故) 육영수 여사 43주기 추모제가 지난 15일 충북 옥천 여성회관 육 여사 동 상 앞과 국립현충원 묘역에서 각각 봉행 되었다.옥천군애향회 주관으로 봉행된 추모제는 부산의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숭모회 회원과 지역 기관단체,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1시 묵념을 시작으로 애향회장과 주요 내빈 의 추도사와 헌시 낭독에 이어 육 여사의 넋을 달래기 위한 ‘살풀이 무용’을 선보 였으며, 성악가 백은경 교수는 생전에 육 여사가 즐겨 듣던 ‘목련화’를 추모노래로 불렀다. 육 여사 추모제는 옥천군애향회 주관 으로 1993년부터 개최하고,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군에서 보조금을 지원해 왔 으나 금년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 련한 사회 분위기 등으로 군의 예산을 지 원받지 않고 자체 비용으로 추모식을 진 행했다. 이날 추모식에 김영만 군수는 “옥천에서 태어난 고 육영수 여사를 기념 하기 위해 군민들의 뜻을 모아 동상을 건 립하고 지역 애향회가 자체 경비로 추모 제를 지내오고 있다”며 “이런 군민들의 뜻으로 건립된 동상 앞에서 대통령 영부 인으로 지내오신 고 육영수 여사 뜻을 기 리기 위해 여는 추모식이 지역주민뿐 만 아니라 육 여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게 추모식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 고있다”는말했다. 한편 국립현충원에서는 재단법인 육영 수 여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추모제향 봉행되었다. 故 육영수여사는 충청북도 옥천 출신 으로 종관(鍾寬)과 이경령(李慶齡) 사이 의 차녀이다.옥천 읍내 죽향국민학교(지 금의 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배화 여고를 졸업한 뒤 옥 천여자중학교 교사 로 근무하였다.1950년 전란으로 부산에 피란 중일 때 육군중령 박정희와 혼인하 여 슬하에 지만(志晩)·근혜(槿惠)·근영 (槿映) 등 1남 2녀를 두었다.1963년 10·1 5총선거에서 6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연 임됨에 따라 대통령 영부인으로 11년간 내조하였다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서 울국립극장 단상에서 문세광(文世光)에 저격당하여최후를마쳤다. 고(故)육영수여사43주기추모제 봉행 김영만 옥천군수가헌작하고있다./사진옥천군청제공 옥천여성회관및 국립현충원묘역에서각각봉행 참봉협의회 중부지역(회장 옥규) 회 원 정례회의가 지난 달 26일 청주시내 한식당에서 있었다. 이날 회의는 최근 강상(綱常)의 법도가 무너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종중이 어수선한 가운데 개 최된 탓인지 옥규 회장(전 아달라왕능 참봉)은 인사말에서 왕조(王祖)능을 수호한 종친애를 더욱 굳건히 맺어가 고 더욱이 숭덕전이 일부외세에 의해 어수한 때 굳건히 숭조심을 지켜가자 고 다짐하는 간단한 인사에 모두 동감의 박수로 화답하고 많은 정담을나누며2년삭망재계봉심한숭덕전이현재처하여있는 우려의 상항과 다가오는 추향대제를 지켜보자고 의견을 모았 다. 참봉협의회 중부회는 경주와 거리 시간문제로 참봉역임 자 는 많지 않지만 숭조와 애종으로 월례모임을 이어 온지 오래 된 박씨범문중의 종친 소모임으로 돈독한 종정(宗情)을 다져가는 모임이다. 한편 이날 회의 후 청주시 오창면 소재 조선조 인조때 병자호 란에서전사한박동명장군의의마총을들러보았다. 의마총의 주인공인 박동명(朴東命)은 순천인(順天人)이며 호는 매은당(梅隱堂)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공은 1575년(선 조8)비하동 주봉 마을에서 출생하고 1599년(선조32)에 무과급 제 태안군수 제주목사를 봉직했으며,공은 한 몸으로 1592년 임 진왜란(선조25년 당시 18세),1624년(인조2)이괄의 난,1636년 (인조14) 병자호란에 출전하여 62세에, 고령으로 순국한 구국 의 초석이었다. 병자호란에 죽음을 각오하고 적과 맹렬히 싸우 다가 급기야 적의 화살에 맞아 순절한 매은당의 휘하장수 김득 성이 적군을 물리치면서 장군의 시체를 찾으려고 정성을 기울 였으나 밤은 어둡고 날은 추워 찾을 길이 없어 애마(愛馬)가 매 은당 저고리를 입으로 뜯은 것을 말안장에 올려놓고 집으로 보 냈다.이무렵큰아들홍원이꿈을 꾸었는데의관을정제한아버 지 매은당이 백발을 쓰다듬으며 방으로 들어와 아랫목에 앉으 며 내가 고개를 넘지 못하고 구천으로 올라갔으니 내 옷을 걷어 고개에 무덤을 쓰도록 하라는 현몽을 하여 잠에서 깨어 아버지 가 순절한 것을 알고 장남령을 향하여 가보니 김득성이 화살을 놓고 진혼제를 올리고 있었으며 장군의 애마는 말발굽이 땅에 붙 어 7 일 간 이 나 물 한 모 금 먹 지 않 고 슬 피 울 다 가 숨 을 거 두 고 말았는데 이곳을 몽단(夢斷)이 고개 또는 접지(接趾)골이라 말 한다. /자료제공=박흥식前 신덕왕릉참봉 중부참봉협의회정례모임 뷺숭덕전이일부외세에의해어수한때 뱛굳건히숭조심을지켜나가자뷻 박옥규회장 김영근 성균관장은 7월20일 오후 2시 성균관장실에서 여수시 화양면의 고 장보엽(張甫葉) 여사에게 효열부(孝烈婦) 포양장 ( 揚狀)을추서했다. 이날 추서식에서 김영근 성균관장은 장보엽 여사의 증손자인 박종상 씨에게 포양장을 수여했으며, 박진석 밀양박씨 규정공 후전한공파화양문중회장과증손녀들이참석했다. 인동화벌(仁同華閥)의 후예로 1871년(고종 8년) 출생한 장 보엽 여사는 향당과 원근에서 효순정절(孝順貞節)로 칭송이 자 자하고 강상부식(綱常扶植)에 귀감이 돼1947년여수향교와 광 주향교에서효열부로추천했다. 하지만 당시 사정으로 포양장이 수여되지 못했고 관련 자료 들을 발굴한 여수향교와 광주향교에서 다시 추천해 이번에 추 서하게됐다. /자료제공박흥식전신덕왕릉참봉 성균관故장보엽여사효열부포양장추 서 효순정절(孝順貞節)로칭송이자자하고강상부식(綱常扶植)에귀감이돼 김영근 성균관장(右)이 장보엽여사의증손자인 박종상 씨에게 포양장을 수 여하고있다. ‘한빛신문은정론직필로서종중 언론의역할을다해나갈것입 니다’ 한빛신문이오늘에있기까지 함께만들어온성손여러분과 애독자 여러분에 게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500만 박씨종보 한빛신문은 그동안 선조님의 현창사업과 성손들의동정을사실그대로전달하며성손들의보학자습서가되고관향조 종친회를비롯한각급종친회와함께발전해왔습니다. 그러나최근일부단체에서 한빛신문을정쟁의도구로이용하 고만들려는추태를 부리고있습니다.수년전부터계획된 ‘한 빛신문죽이 기 운 동 ’의 일환 으 로 종중 어른 들 은 경 악 을 금치 못 하고 있습 니 다. 권력자가약점을잡힌게많거나엉뚱한일에탐닉을하게되 면2인자는대부분이지록위마하게되는가봅니다.지록위마 (指鹿爲馬)란 사슴을가리켜말(馬)이란뜻으로,윗사람(종중어른)을농락하 고함부로권세를부리는단체의종사자에게맞는사자성어인 듯합니다. 이제한빛신문은어떠한협박과압력에도굴하지않고꿋꿋하게종중언론으로 서그역할을다하고자합니다.많은성원부탁드립니다. 2017.8.31.한빛신문임직원및명예기자단拜上뱚뱚뱚뱚뱚뱚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