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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6월30일 금요일 10 (제126호) 종합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 지난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 5년 만에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은 참전용 사박용규(88)씨가화제다. 유공자 증서를 받고 절뚝거리는 박씨 를 문재인 대통령이 부축해 연단을 내려 갔고 이들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졌다. 박씨의 손에는 국가유공자 증서, 가슴에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배지가달려있었다. 박씨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강릉에서 자원입대했다. 전차부대에 배속돼 춘천 과 철원의 전장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박 씨는 전쟁 당시 잃은 전우들을 평생 가슴 에 슬픔으로 새겨야 했다. 박씨는 전우들 에 대한 미안함을 이유로 65년간 국가유 공자신청조차하지않았다. 아들 박종철(59·강릉 주문진 보건지 소 의료지원담당)씨는 “오랫동안 설득 했지만 아버지는 `전사한 전우들이 유공 자로 자신은 공이 없다'면서 한사코 거 절하셨다”며 “손자가 군복무를 마치면 서 3대가 명예롭게 군복무를 마친 병역 명문가로 선정됐고 이를 계기로 아버지 를 설득해 올해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 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1일 청와대와 국가보훈처 로부터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들 박씨는 추념식에서 국가유공자 대표로 나서 아버지에게 보 내는 편지 형식으로 소감을 발표했다. 아 들은 21세 나이에 전쟁이 나자 자원입대 한 후 신병훈련을 받기 위해 8일간 강릉 에서 울산까지 걸었다는 아버지를 회상 하 며 븮먹 을 것 도 신 을 것 도 변 변 치 않 았 을 길을,그러나전쟁의포화 속에서 그길을 걸으며 내 가족과 내 나라를 내가 지키겠 다는 아버지븯라고 표현했을 때 영부인 김 정숙 여사가 눈물을 흘리는 등 많은 사람 이감동을받았다. 아들 박씨는 “아버지께서는 그동안 국 가유공자 선정을 고사해 오셨으나 막상 대통령으로부터 증서를 직접 수여받는다 는 소식을 듣고 밤새 뒤척이실 정도로 감 격하시고 설레는 모습이었다”며 “국가유 공자증서를 받으신 후 아버지는 애비야 나 이제 전우들에게 돌아가도 여한이 없 겠다고 말씀하셨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 했다. /자료제공강원일보최기영·임재혁기자 “먼저간전우들볼면목이생겼 어요” 65년만에국가유공자증서받은참전용사박용규씨(강릉)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국가유공 자인박용규씨(가운데)를부축하고있다.오른쪽은아들박종철씨.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남편을 조국 품에 바치고, 온갖 역경 속에서도 훌륭히 자녀를 성장시킨 미망인에게 주는『제39 회 장 한 어 머 니 상 시 상 식 』이 1 5 일 (목 ) 1 5:00 중앙보훈회관(여의도) 대강당에서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회장 강길 자)주관으로열렸다. 이날 시상식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보훈단체장과 수상자 가족, 전몰 군경미망인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 운데 공적심사 결과보고, 시상, 식사, 축 사, 답사 등의 순서로 진행된가운데 영예 의 수상자 중에는 “6.25전쟁 중 금화전투 에서 좌측 대퇴부 부상으로 73년 상이처 악화로 사망 한 남편을 대신하여 농사와 낙농 등으로 힘든 일상 속에서도 2남3녀 의 자녀를 훌륭한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 박춘자(경기,83)씨”등 19명이 선정되었 다. 수상자는 전몰군경미망인회 전국 시? 도지부에서 추천한 후보자를 자체 공적 심사위원회에서 엄정히 심사하여 19명이 선정되었으며, 1979년에 시작하여 금년 까지총686명에달한다. 이날 함께 수상한 박옥수(충북, 79)씨 는 “6.25전쟁 중 백마고지 전투에서 다리 를 절단한 상이3급 전상군인으로 81년 사 망 후 인천제철 구내식당에서 어렵게 일 하며 자녀(2남1녀)를 훌륭히 키워낸” 장 한어머니이다. /자료제공국가보훈처 제39회 븮장한 어머니상븯시상 장한 어머니상 박춘자 등19명 수상 지난2006년12월경남의령의박경영현종이아버지고박정상공(公)의유해를대전국립현충원에안장 후묘역앞에서헌화하고있다. 고박점상공(公)은1922. 1. 6에경남의령에서출생하여경찰로복무중 순경으로한국전쟁중 1950년 8월 3일 삼천포전투에서 전사하여 미망인이명순여사는28세에 청상(靑 孀)이되어재가하지않고아들을위해헌신하였다. 박영봉 감사가 35년간 국군장병을 위문한 공로로 박준규 육군참모총장으로 부터감사패를전달받고있다. 35년 동안 자신이 전역한 군부대를 비롯해 특수훈련을 받는 국군장병을 위문해 온 박영봉 감사(가톨릭관동대 생활관장, 촛 불장학회장)가 35년 동안 국군장병을 위문한 공로로 장준규 육 군참모총장으로부터지난달28일감사패를받았다. 박 감사는 “할 수 있는 정성과 애정에 대해 이렇게 감사패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확고한 국가관과 안보 의식으로 무장해 국군장병들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과 사랑을 전하고싶다”고말했다. 박영봉 감사는 1979년 특전교육단 공수교육대 접지교관으로 근 무 하 던 중 상 이 를 입 고 1 9 8 0 년 전 역 한 상 이 6 급 국 가 유 공 자 로 전역 후부터 지금까지 각종 사회봉사활동과 장학사업으로 어려운 이웃들의든든한 버팀목이되어주고있다. 그리고 1989년부터 신문 배달로 얻은 수익금에 자비를 더해 촛불장학회를 설립, 29년간 불우 청소년 등 360여명에게 1억9 천여만원을지원했다. 그리고 2009년부터는 ROTC 후보생들에게 매년 촛불장학 금을 수여해 후보생들의 애국심함양과 사기 진작에도 힘을 보태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 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5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박용백명예기자(강원강릉시지부) 강릉시지부박영봉감사육군참모총장감사 패받아 35년간 군부대 위문한 공로 ■호국보훈의달특집월남전참전용사를만나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한 개인이기 전에 누군가의 자녀이 고, 누군가의 부모이며 형제이고 또 하나 의 직장, 마을, 지역, 나라에 속한 구성원 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개인도 '우리' 라는 이름으로 만든 여러 문제에 대해 자 유로울 수 없어 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하 는 문제들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 이다. 그러나 지금의 양극화 된 사회는 어떠 한가?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저마다 자기 의 목소리를 내세우고 힘과 권력으로 모 든 것을 장악하려 하고 있어 소위 열사라 하는 계층이나 재난사고 희생자들에게는 범정부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반 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가유공자 에 대해서는 기념일이나 반짝 얘기가 나 올 뿐 냉대를 넘어 멸시를 받는다는 말까 지 나올 정도이니 이 또한 사회지도층을 넘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확인 해보면서 월남 참전용사 박상철 전(前) 양평군종친회장을만나본다. 대한민국 국군의 베트남전 참전(大韓 民國軍 베트남戰 參戰)또는 월남전 참전 (越南戰 參戰),은 1964년9월 11일 1차 파 병 시작은 한국의 파병 제안과 월남정부 및 미국의 요청에 따라 행해진 대한민국 최초의 국군 해외 파병으로 전세가 치열 해지기 시작한 1965년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된 1973년까지 파병하였다. 월남전에의 참전은 월남전의 특수한 사정에 따라, 외화획득이라는 경제적 이 득이 부수되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었 으며, 한반도 안보 문제와 관련, 한국군 현대화를 골자로 한 브라운각서(1966년 3월)를 낳았고, 전투 경험을 얻었다. 반 면,파병된대한민국군 32만명중5,099명 의 사망자(KIA)와 11,232명의 부상자 (WIA)를기록하고,31만명이생존귀국 하였다. 또한 159,132명의 고엽제 피해자 를 낳았으며 화공약품 후유증으로 귀국 후병사자가다수발생하였다. △ 월 남 전 참 전 은 언 제 1969년 12월 파병 1970년 12월 귀국하 여 1971년 3월 경북 안동에서 전역하였습 니다. △참전이후기억에남은전투는 저는 주월 한국군 사령부직할 비둘기 부대(건설지원단)에 근무하였습니다. 비 둘기부대는 본부근무대 공병대대 201병 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는 본부 근무 대 인사참모부에서 복무하였으며 저의 직책은 사병들의 군.복무 인사를 보조하 였으며, 특히 가난한 장병들의 월남 복무 연장근무 희망을 도와주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경 제사정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확인해주는 일이기도하지요. 오죽 힘들었으면 아침저녁이 다른 전 투 현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의 전장 의 돈벌이의 수단으로 즉 목숨을 돈과 바 꾸겠다는 어이 없은 현실을 주목하지 않 을수없었습니다. △귀국후후유증은없었는지븣 귀국 후 한동안은 힘들었죠. 우선 전쟁 은 아이들 손꼽장난이 아니잖아요. 사람 이 죽어나는 현장이이기도 하기에 전우 들의 희생을 눈여겨보았는데 힘들었죠. 그리고 고엽제는 젊음과 꿈을 모두 빼앗 아 갔다고 하면 됩니다.지금은 고엽제 후 유의증 환자로 판명되었으며, 현재도 국 가의보호를받고있습니다. 주(註) 고엽제(枯葉劑, 영어:defolian t)는 나무를 고사시키기 위해 살포한 제 초제를 말하며 미군이 베트남전 당시 사 용한 에이전트 오렌지가 유명하다. 베트 남 전쟁에서 살포된 고엽제에는 다이옥 신이라는 화학적 불순물이 있는데, 이것 은 치사량이 0.15g이며, 청산가리의 1만 배, 비소의 3000배에 이르는 독성을 가지 고 있다. 이 독소는 분해되지 않고, 체내 에 축 적 되 어 1 0 년 ~2 5 년 이 지 난 후 에 도 각 종 암과 신경계 손상을 일으키며, 기형을 유발하고,독성이 유전되어 2세에게도 피 해를끼친다. △ 정 부 지 원 은 븣 치 료 와 함 께 약 간 의 지 원 비 를 지 급 받 고 있으나 미미합니다. 최근 세월호 희생 자나 시위현장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 은사람들에 대한 예우와 비교하면 서글 픈생각이듭니다. △ 현 재 근 황 은 사단법인 연날리기 협회 이사장으로 국내외 우리의 연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 연 을 알리고 중국의 각종 연날리기 경연대 회에운영위원으로활동하고있습니다.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오는 민족전래의 기예(技藝)의 하나로서 소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성들 의 흥미를 끌어제2차세계대전전까지만 해도 음력 정초가 되면 해마다 우리 나라 각처에서 성행하여 장관을 이루었던 민 속놀이였으나 지금은 우리 기억에서 멀 어지고있습니다. △ 종친회에도 많은 관여를 한 것으로 알고있는데 2009년 양평군 종친회 창립을 주도하 여 추진위원장을 맡아 화려하게 창립시 켰습니다. 이후 중앙종친회의 파행으로 비상대책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숭덕전 某 전 참봉이 오릉보존회에서 숭덕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시 도본부장과 비상대 책위원회에 수 백년 전참봉 중심으로 운영되어온 숭덕전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며 소송을 부추겨 시도본부회장단과 송사가 시작되었는데 황당하게도 그 전참봉은 지금 오릉보존 회를 이용 숭덕전을 장악하고 있어 우리 종친사에 부끄러운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합니다. △종친회에대한고언(苦言)은 많은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숭덕전은 누구 개인의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국전 입니다. 이제 우리 종친회의 아픈 과거를 청산하고 화합하였으면 하는 생각뿐입니 다.각급 단체 모두의 이상은 하나입니다. 숭조(崇祖)이지요 숭덕전은 옛날처럼 전 국민으로부터 추앙받는 곳이 되고 오릉 보존회는 전국종친회 종원들로부터 신뢰 받는 대표기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 니다. 숭덕전 참봉은 숭덕전을 수직하는 분 으로 우리 종친회의 최고원로로 추앙받 아야 합니다. 그리고 종친회장은 봉사하 는직책이라생각하면좋겠습니다. 박상철 전 양평군종친회장 월남전에서한국군해병대의모습(사진-인터넷에서발췌) 월남전참전중박상철회장. 지난2013년박근혜대통령취임을축하하는연을날리고있는박상철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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