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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17년 6월 30일 (음윤5월 7일) 금요일(신라기원 2074년) 전화:053-588-7300 제126호 12면(월간)뱚 인체파동원리 http://blog.daum.net/tongnamu79 손을 얹으면 아픈 곳이 낫는 보석체험, 추풍령 통나무연수원 븡펜션. 문의:010-2336-7852 무안박씨연합청년회정기총회에참석한 회원들이 암천사참배후더발전하는청년회를만들어보자며다짐하고있다. 무안박씨 전국청년연합회(회장 인선) 제10차 정기총회가 지난 24일 충남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 당호재 에서 전국 10개 지구 청년회원 200여 명이 참석하고 대종회 형준 회장과 중환 사무총장, 노성파 종욱 회장 등 이 지 켜 본 가 운 데 오 전 1 0 시 3 0 분 암 천사 고유를 시작으로 1부 총회 2부 화합의 한마당으로 펼쳐져 종일토록 뜨거운열기속에진행되었다. 행사를 주관한 노성파 청년회 해 룡 회장은 오늘 행사는 노성파 청년 회 가 한 단 계 도 약 할 수 있 는 기 회 가 될 것이라며 기회를 준 집행부 임원 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노성파 세거지에서 전국 청년연합회가 한마 음 한 뜻 으 로 한 핏 줄 임 을 한 번 더 느 끼 고 귀 가 할 수 있 는 뜻 깊 은 총 회 가 되기를 기원 드린다며 환영의 인사 를하였다. 인선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든 내 면에 흐르는 피 속에는 중시조인 무 안군(務安君, 휘 진승)의 피가 흐르 고 있음을 기억하자고 강조하고 청 년회가 일취월장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되길기원한다고하였다. 이어 형준 대종회장은 청년회의 위대한 여정에 찬란히 빛날 가문의 역사가 더 밝은 내일을 위한 거룩한 발전의 동행이 되길 바란다며 격려 하였으며, 종욱 노성파 회장은 청년 회 조직 강화에 최선을 다해주시고 화합과 자립의 토대를 튼튼히 하여 줄 것으로 믿는다며 성숙해진 청년 회를축하하였다. 이날 총회는 경과보고와 업무보고 에 이 어 차 기 총 회 개 최 지 선 정 과 기 타 안건을 상정하여 다음 개최지로 전남무안군으로정했다. 이에 무안파 청년회 성재 회장은 관향지인 무안에서 회원여러분들과 정을 나눌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하 고 착실히 준비해 추억에 남을 수 있 도록 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해 다음 총회에 대한 기대감속에 회의를 마 치고 준비한 오찬과 함께 화합의 한 마당으로 이어져 청년들이 갖고 있 는 끼를 발산하며 하루를 만끽하여 보는이를흐뭇하게하였다. 옛 말에 담장으로 넘어 들리는 웃 음소리는 그 집안 화목의 척도를 짐 작 케 한 다 고 하 여 이 날 울 려 퍼 진 화 합의 하모니는 무안박씨 청년들의 돈독한 정과 대종회 미래를 내다볼 수있었다. 한편 회의를 주관한 노성파는 단 종복위사건으로 외조부 성삼문을 비 롯한 사육신이 화(禍)를 당하 자 입 신양명(立身揚名)과 부귀공명(富貴 功 名 ) 의 삶 을 거 부 하 고 세 상 을 등 진 채 절의를 지키며 초야에 묻혀 무명 (無名)과 은둔의 삶을 살고자 한 암 천공 박증 선생으로부터 문호가 열 렸다. 암천공은 1461년 세조 7년 신사 (辛巳)에 서울에서 태어나고 1480년 말에 충청도 계룡산 하(下) 노성현 동쪽 암천에 은거하며 호를 암천이 라 하다. 단종대왕의 폐위와 세조의 찬탈과 외조부 성삼문 선생의 참화 를 통탄하고 벼슬에 뜻이 없어 암천 연못에 낚시와 풍월로 울분한 흉금 을달래면서일생을마쳤다. 암천사는 암천공 박증 선생을 주 벽으로 하여 이하 10세 22位와 동재 의 추원재 39位, 서재 경모재에 배향 된 38位의 배향된 곳으로, 당호재는 암천공이 배향된 모곡서원이 훼철되 자이건한재사이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무안박씨전국청년연합회제10차定總성 료 전국순회회의로친목다져븣다음개최지무안 박종욱 노성파 회장이 형준 대종회장을 비 롯한 청년회원들에게 암천공 묘전에서 암 천공의생애를설명하고있다. 박동인 해남파 전(前) 청년회장(맨 왼쪽)이 함께한 가족을소개하고있다.이날 행사에 아들대열(기획재정부 주무관)군과 손자손 녀 등 3대가 참여해 인선 회장은 다음 총회 에는더많은가족의참여를주문했다. 박인선연합청년회장박해룡노성파청년회장 밀성박씨 전국청년회는 지난달 27 일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조유 적지 순례행사를 가졌다. 청년회의 유적탐방은 충효사상을 함양하고, 회원 상호간 서로의 마음을 열어 친 목을 다지는 자리를 마련하여 몸으 로 체험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정체 성을 인식하며 숭조를 몸으로 실천 하고, 청년회 활성화를 기하는데 목 적 두 고 있 다 . 이날 행사는 부산지역에 소재하는 밀성박씨 정국군파 학장문중 경모재 (景慕齋), 죽산박씨 영추재(永追 齋), 주산재(珠山齋), 월성박씨 화전 재(花田齋)를 들러 참배하고 관계자 들로부터 재실운영 등 제반사항 설 명을 들은 가운데, 정국군파 학장문 중에서는 종만 회장이 나와 상세한 설명과 함께 청년들의 방문을 환영 한다고 말하고 문중 역사상 이처럼 많은 순례단이 찾은 것은 처음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 다며 환영의 인사와 함께 종중에서 는 사당관리에 집행부 임원진이 솔 선수범하고 있고, 도심에 소재해도 선조님의 음덕으로 큰 어려움이 없 다며 운영 전반에 대해 소개하고 청 년들의 종사운영에 대한 배움의 열 정 에 다 시 한 번 더 감 사 하 고 , 이 에 치하와 함께 격려를 보낸다며 청년 들을맞이했다. 죽산박씨 총재공파 의재공 재사 (齋舍)에서는 재일 전 파사왕릉 참 봉의 안내를 받아 단소에 참배 후,재 일 참봉은 큰댁 청년들의 방문과 활 동모습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하고 청년들은 훗날 종친회를 이끌어갈 재원으로 보학상식 증진과 숭조심 고취에 중점을 둔 이번 순례는 배울 점이있다고말했다. 월성박씨 화전재는 대종 상무이사 가 청년들을 안내하며 현황을 설명 하고 치하하였으며, 죽산박씨 인묵 재 종중의 영권 이사장은 학교법인 을 운영하는 종중으로 학생들의 귀 감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순구 청년회장은 따뜻하게 맞이해준 문중 어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 리 청 년 들 은 착 실 하 게 배 워 미 래 종 중운영에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겠 다고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대종회 진국 회장, 산청군종친회 재동 회장, 의령군종친 회 성 만 회 장 과 임 원 진 등 이 참 석 청 년들을 독려한 가운데 진국 회장은 격려사를 통해 세세년년 빠지지 않고 유적지순례행사를 기획하여 실천하 고 있는 청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 하고 오늘을 계기로 더 발전하는 청 년회가 되어주길 당부한다고 말하고 재부박씨 종친회에서 준비한 타올과 종보나정을선물로전달하였다. 밀성박씨 전국청년회는 지난 2001 년 창립되어 2003년 처음 선조유적 지 순 례 이 후 매 년 빠 지 지 않 고 전 국 을 순 회 하 며 선 조 의 유 훈 과 각 문 중 의 운영전반에 대한 현장학습을 통 해 역 량 을 키 우 고 있 어 어 른 들 로 부 터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 근 젊은 청년들이 참여가 저조해 집 행부에서는 청년들 영입에 많은 공 을 들이고 있다. (※회원가입 문의05 5-354-4421)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net) 밀성박씨전국청년회선조유적지순례 자신의정체성을찾아숭조를몸으로 실천하고,청년회활성화를기해 유적지순례단이 부산태종대를찾아기념촬영을하고있다. 신라만고의 충신으로서 왕 명을 받들어 고구려에 볼모 로 잡힌 왕의 아우를 구하고 왜에 잡혀있는 신라왕자 미 사흔을 구출하고 자신은 포 로로 잡혀 온갖 고문과 왜왕 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뷺내 비 록 계림(신라)의 개븡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다뷻 말해 처참하게 화형 당해 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최고의 충절과 절개의 사표(師表)가 된 관 조 충렬공 박제상 선생의 추모제향이 대마도 현지 에서봉행되었다. 이날 제향은 영해박씨대종회(회장 성수) 주관 으로 봉행된 가운데 30여명의 종원들은 아침 일찍 제물을 준비하여 부산항여객터미널에서 승선하 여 대마도 현지에 도착,추모제단에서 현지인들의 추모행렬속에 박성수 회장의 초헌례를 시작으로 엄숙봉행되었다. 최근위안부할머니협상이이슈가된가운데영 해박씨의 시종조인 관설당박제상공의 대마도 순 국비를 보면 한국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가 많이 다름을알수있다. 한국의 역사서(삼국사기븡삼국유사)에는 관설 당께서 일본의 목도(木島-日本 九州지방)에서 순 국하신 걸로 기재되어 있고, 일본의 역사서(日本 史記)에는 대마도에서 순국하신 걸로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대마도순국비의 건 립에 관한 흐름에 관여하게 된다. 1977년 한국학 자 이종기((李鍾埼)씨가 목도에서 순국하신 관설 당공의 조사자료를 일본 세계일보에 20회에 걸쳐 연재를 하였고, 이후 1987년에 사설평론가 이규태씨가 목도 에 관설당순국비를 건립하자 고 칼럼에제시하였고,이에 부 응하여 일본 측에서는 당해 대 마도역사학자 나가도메 히사 에(永留久惠)씨의 주도하에 있는 대마순국선열현창회(大 馬殉國先烈顯彰會)에서 대마 도에 1988년 朴堤上殉國之碑 가건립되게되었다. 순국비의 안내문에는 양국 의 역사관이 명확히 보인다. 「동(東)아시아 의 격 동기였던 오세기초두(五世紀初頭)新羅는 왜(倭) 와 통교관계(通交關係)에 있었으며 新羅에서는 親善을 위하여 내물왕자(奈勿王子) 미사흔(未斯 歆)을 일(倭)에 파견하였다. 그 후 미사흔의 귀원 (歸原)이 늦어지자 訥祗王은 使臣朴堤上을 倭에 보내어 王子의 還國을 요구하였다. 미사흔과 신라 의 사신일행이 귀국도중 대마도의 이곳 서해수문 (쉼海水門)에서 충돌(衝突)이 일어나 지모와 용 기를 가진 박공은 왕자를 무사히 귀국시키고 자신 은 이곳에서 순국하였다고 兩國의 古記錄에 보인 다. 이렇듯 忠節을지킨 신라만고충신 朴堤上公의 崇 高 한 뜻 을 기 리 기 위 해 殉 國 碑 를 세 운 다 .」 안내문에서 명시되어 있는 문구에 대한 한국의 역사(삼국사기븡삼국유사)에 기초한 문제점은 뷺친 선을 위해 미사흔을 보낸 게 아니라 볼모였으며, 대마도에서 순국한게 아니라 목도에서 순국하였 으며, 양국의 고 기록에 보인다고 하였으나 한국 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달리 명시되어 있 다.뷻 한국의 역사에서는 관설당 박제상 선생이 목도 로 끌려가 전향을 요구당하며 달콤한 제안과 잔인 한 고문을 당하고 불에 타죽었다고 나와 있고, 일 본의 역사서(일본사기)는 대마도에서 일본장수 습진언(襲津彦)이 속은 것을 알고 불태워 죽였다 고 나 와 있 다 . 그러나 일본과 한국역사의 기록이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관설당 박제상 선생의 충절은 당사자국 인 일본에서조차 만고충신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고,현실적으로 일본 쿠슈지방인 목도에 순국비 의 건립이 불가능하기에, 대마도 작은 포구 미나 토 마을에 순국비가 세워져 영해박씨 대종회에서 는 매 년 추 모 제 례 를 올 리 기 위 해 대 마 도 로 향 하 고 있다. 영해박씨대종회始宗祖충렬공박제상선생 대마도추모제단제향봉행 충절과절개의사표(師表)되어 대마도현지의추모제단에서박성수회장이 초헌례를올리고있다. 이날 제향은 아침 일찍 30여명의 종원이 부산항을 출발, 대마도 현지에 도착, 제 례봉행후함께하고있다. 박성수회장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