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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단군께서 건국이후 유구한 반만년 역사를 견지해 오던 중 우리 국가주권을 단기 4243년 경 술 8월 에 침략국 일본에게 강합(强合)을 당하여 식민지 정책에 우리 전 국민이 노예가 되어 치 욕의 고난 을 당하므로 통분 억울함을 금할 길 없어 국권회복을 기천염원(祈天念願)하던 중 민족 대표 손병 희 선생 외 32인이 단기 4252년 대한민국 원년 3월 1일에 독립선언서를 발포하고 독립 투쟁을 전 개하였다. 그 당시 고종황제께서 승하사시와 3월 3일 인산(因山)시에 기독교, 천도교, 불교, 종교 단체가 주 동이 되어 시민 수십만명이 뒤를 이어 탑동공원 및 동대문에 집합하여 독립 선언서를 낭 독하고 태 극기를 높이 들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항일투쟁 의거를 전개하였다. 3월 3일 별기 열사 24인 이 상호 연락하여 최후 일각까지 최후 일인까지 동지를 다수 규합시켜 독립만세를 부르 며 의거할 것을 비밀 결의한 후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수천매를 준비하고, 3월 3일부터 4월 4일까지 수백명씩 동원하여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계속 독립만세를 부르고, 밤이면 군 내 각처에 서 동지들이 봉기하여 봉화를 놓고, 만세를 불렀는데 만세소리는 천지가 진동하였다. 도 열방적으 로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백범 김구선생 주석에게 전달하였다. 일관헌에게 독립의거 주동 및 군자금 모집사실이 발각됨으로 별기열사들이 체포구금되 어 악형을 당한 참상은 실로 목불인견 구불인언(口不忍言) 별별 고문을 당한 후 전주, 대구, 서울 형무소에 서 누년 옥고를 당하였다. 그 뒷받침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신경식, 류상능 두 열사는 가산을 경주하여 오북 의 숙을 창설 하고, 정선유 열사는 삼일학교를 창설하여 3,4년간 수백명 청소년에게 애국사상과 민족 성신을 고 취함양하였는데, 일정당국에서 불온학교라고 강압적으로 폐교 명령이 내려 부득이 폐교 를 당하여 통분함을 금할 수 없었다. 별기 열사들이 출옥 후에도 백절불굴하는 정신으로 세금불납 동맹을 일 으켜 소위 무단정치 불의포획한 일정당국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통열한 배일 운동사를 꾸미었다. 3·1운동 열사들의 일편단심 정열적인 독립운동 위대한 정신에 천우신조하여 제2차 대전 에 연합국 의 승리로서 일본이 패망하여 단기 4278년 서기 1945년 해방이 되고 단기 4281년 서기 1948년 8 월 15일 대한민국이 독립이 되었다. 별기 열사들은 우리 오천년 민족의 사표가 되며 그 의적(義績)은 청사에 길이길이 빛나 므로써 입 비 명기한다.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