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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동성당 / 광천시민아파트 사적 27호 - 광주광역시 서구 죽봉대로 119번길 28-13 5.18 민중항쟁 사적 27호 / 위치 : 광천동 성당 - 사진의 하단 중앙에 위치한 건물이 들불야학이 열렸던 야학당의 모습이다. 이곳은 광천동 성당의 교리실로 쓰였던 곳으로, 1957년 공소를 설립할 당시의 건물이었다. 이곳에서 1978년 7월 23일, 35명의 학생들과 7명의 교사들이 조촐한 입학식을 거행하면서 들불야학이 시작되었다. '들불'이라는 이름은 박기순 열사가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쓴 소설 '들불'(유현종 저)을 읽고 "들불처럼 번져간 동학혁명의 뜻을 기리자"는 의미로 이 이름을 택했다고 한다. 들불야학당은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을 전후해 윤상원.박관현.박기순.김영철.박영준.신영일.박효선 등 들불열사들이 역사를 실천했던 장소다. 실제로 들불야학은 이 지역 야학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1970년대 말 포악한 유신독재와 개발독재의 어두운 그림자 아래 새로운 노동운동.민중운동의 씨앗을 뿌리면서, 이후 지역 민주화운동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들불야학은 5.18 이후 침체기를 겪었고 1981년 문을 닫을 때까지 모두 4기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우측 하단의 작은 사진은 6.25 피난민과 부랑인을 위하여 지어진 '시민아파트'로, 1969년 광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아파트이다. 낙후한 지역의 개발을 위해 설립된 '전남협동개발단'에서 파견된 김영철 간사가 바로 이곳에 거주하면서 어린이 주말학교를 열고, 삼화신용협동조합을 인수하여 신협을 정상화하는 등 들불야학이 시작되는 분위기를 마련한 곳이다. 또한 이곳은 5.18항쟁 때 도청에서 계엄군에 의해 숨진 윤상원 열사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들불야학당은 노후화된 건물과 광주시의 도시계획 아래 철거에정지로 지정되면서 철거절차를 밟게 되었다. 그러나 들불야학의 역사성과 그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성당 측과 협의하여 2006년 5월 1일 벽체보존 공사와 함께 표지석을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