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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열(당시 조대부중 3학년)이는 1980년 5월21일 휴교령으로 학교에 가지 않았다. 5월18일 이후 군인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광주시민들을 살상했는지를 지켜본 부열이는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한 계엄군이 주요 도로를 차단하고 양민들을 학살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집에만 있을랑게 갑갑하다"며 대충 둘러댄 부열이는 동명동 집을 나섰다. 총을 든 부열이는 지원동 주남마을 야산 등지에서 계엄군들을 추격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열흘, 스무날이 지나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부열이를, 찾아 나선 어머니는 미친 듯이 병원 영안실을 뒤지고 다녔다. 6월12일 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주남마을 뒷산에 매장된 시신이 아들이 맞는지 확인하라는 전화였다. 함께 달려간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부열이의 모습을 차마 보여줄 수 없었다.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가는 등 너무나도 처참하게 살해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부열이는 5월23일과 24일 사이 계엄군의 총에 사살됐다는 사실이 20사단 군인에 의해 밝혀졌다. 출처 : 전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