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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학당국은 1985년 이후 총학생회를 건설하려는 학생운동을 교직원 동원 폭력행사, 용공사건 조작(외로운 자의 선언 사회주의기도 조직), 자술서 강요 등 온갖 방법을 통해 방해.탄압하였다. 이런 악조건 하에서도 학생운동은 '반외세.반독재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민족민주민중해방을 위한 연대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87년 5월에는 대학당국의 감금.폭행.고문 등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건설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민주화투쟁을 하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기간에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매일 수 천 명이 광주 도심 곳곳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 박철웅 처단, 도민대학 환원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하였다.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의 승리를 경험한 학생운동권이 '조선대학교 총학생회건설준비위원회'를 재정비하고, 1987년 9월 '학원민주쟁취 및 복적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본관 점거농성 투쟁에 동참하면서 학원민주화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학생들은 수업거부와 장기농성 투쟁으로, 교수들은 양심선언으로, 동문들과 시민들은 지지서명 등 정신적.물질적 후원으로 조선대학교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1988년 1월 8일 새벽, 113일간의 장기농성투쟁은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막을 내린듯했으나 민족자주교육과 인간중심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조선대학교의 새 역사가 전개되는 분수령이 되었다. 1.8항쟁은 조선대학교를 제왕적 족벌경영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켜 설립의 역사를 되찾고 민족민주대학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게 한 일대 사건으로 대학민주화운동의 신기원을 이룩함과 동시에 한국 민주화운동에 있어서도 기념비적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