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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0일 오후 6시 택시기사들은 시내로 흩어져 동료들을 모으 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후 6시 경, 무등경기 장 앞에는 2백 여 대가 넘는 차량들이 모여들 게 되었다. 대형버스를 앞세워 경적을 울리고 전조등을 비추며 도청으로 향한 행진이 시작 되었다. 1980년 5월 18~19일 무고한 시민을 향한 공수부대의 폭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는 운전기사들 이었고 그들 또한 피해자였다. 학생들을 태워주거나 부상자를 실어 날랐다는 이유로 차를 파손당하거 나 집단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사망하기도 하였다. 5월 19일, 가톨릭센터 앞을 지나던 택시에 탑승하고 있던 학생들을 공수부대가 강제로 끌어내렸다. 택시기사는 이를 만류하다 공수부대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고 심각한 부상으로 기절하였다. 5월 20일 오전, 동료의 피해소식을 들은 택시기사들은 공수부대 의 만행에 분노하고, 차량 시위로 시민들과 함께 하기를 결의한다. 1980년 5월 20일 오후 6시 40분 유동삼거리를 지날 때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 며 시민들을 응원했다. 유동삼거리는 도청에 운집한 시위대가 공수부대에 쫓겨 온 곳이기 도 하며, 시민궐기대회를 위한 차량 가두방송 이 진행된 5.18민주화운동 도심부의 끝자락 이기도 하다. 무등경기장 정문 차량 시위 사건의 발단 유동삼거리 1 2 사적 18호 광주광역시 북구 서림로 10 무등경기장 정문 건너편 화단(소방서 옆)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 북성중학교 앞 삼거리 (임동 오거리와 유동 사거리 사이) 10 오월민중길 민주기사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