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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근 혜 전 대 통 령 의 정 치 입 문=1 997년 박근혜 전 대 통령은 대선을 앞 두 고 한 나 라 당 에 입당 했다. 이어 이 듬해 1998년 4울 대 구 달성구 보궐선 거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2004년 두번째 총선때 필자는 밀성박씨대종회 감사역 으로 있으면서 박근혜 일가를 돕기 위해 대구 달성에 있는 박후보 선거 사무실을 찾았다.그날 박근혜 후보는 자기 지역구 는 놔두고 인근지역 지원 유세에 나가고 없었다 박후보 사무실은 썰렁하기까지 했다 사무실에는 박지만씨와 3~4명의 종 사자가 사무실을 지키면서 필자를 맞이 했다. 붐벼야할 선거사무실이 왜 이렇게 썰렁해서야 되겠느냐고 박지만씨에게 말 을 건냈더니 지만씨 왈, 지역구는 지역구 민들이 책임질 테니 한나라당 인근지역 유세에 나가 달라는 요청이 빗발쳐 몇일 째 인근지역 지원유세를 하고 있는 중이 라고 말했다. 그만치 당선에 자신있다는 말을 듣고 격려금만 전달하고 돌아왔다. 그때 박근혜 후보는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아국회의원2선에무난히당선됐다. 2002년 한나라당 부총재가 된 박근혜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총재 1인 체제를 비판하며 탈당하여 “한국 미래연 합”이라는 정당을 창당한 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다시 한나라당에 복당했다.박 근혜의원은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이 위기에 처하자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그는 “저 에겐 부모도 없고 남편과 자식도 없고 오 직대한민국이있을뿐이다”고했다. 그때 박근혜 당대표는 “천막당사”정 신을 발판으로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당선시켰다.그 후 그는 당대표로서 지휘 한 보궐선거에서 모두 승리하여 “선거의 여왕”이란별칭을얻었다. 2006년 5월31일 지방선거 유세도중 박 근혜 당대표는 “커터칼 테러”를 당하고 서도 병상에서 “대전은 요”하고 말하며 유세를 계속했다. 그때의 흉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전 서울 시장에게 패하 고 “저 박근혜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 복한다”라고 하며 한나라당의 정권회복 에 기여했다. 그때 필자는 박근혜대표에 게다음과같은편지를써서보냈다. 존경하는박근혜의원님께 전략... 이번 한마라당 대통령 후보 경 선 과정에서 처음부터 절대 불리한 상황 을 딛고 1.5%란 박빙의 표까지 끌어올린 박후보님의 완력에는 참으로 경탄을 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략...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과거는 쏜살같이 달아나고 미 래는 머뭇머뭇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디 건강에 유의 하시고 또 한번 미래를 기약 하여 주시기를 우리 400만 성손들은 간 절히 기원하고 있습니다. 하략...2007년 8월 22일 박희학 드림 ◎ 1 8 대 대 통 령 당 선 = 2011년 12월에 는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장을 맡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총선을 지휘했다. 19대 총선에서 과반의 석을 확보하여 집권여당 대선후보가 됐 고 연 말 대 선 에 서 5 1 .6 % 의 지 지 율 로 1 8 대대통령에당선됐다. ◎ 박근혜 정부의 주요성과와 비운의 탄핵=박근혜대통령은취임초기창조경제 를내걸고한·중자유무역협정(FTA)체결 등을 통한 경제 성장을 추진했다. 또 매년 수조원의 적자가 예상됐던 공무원 연금개 혁과외교·안보분야에서북한에대한원칙 적인자세를보이면서개성공단중단등압 박을 계속하면서 종북 논란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고 북한인권법·테러방지법 등 전 정권에서하지못했던성과를거두었다. 그러나 작년 9월 40년동안인연을 가졌 던최순실씨가개입한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확인되지 않은 각종 폭로성 비리의혹이 특검에 의해 잇 따라 확인되면서 결국 작년 12월9일 국회 에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면서 대통령의 직무가 중단되다 91일 만인 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이 인용되면서 대통령 직에서 파면되어3월12일강남삼성동사 저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도 잠시일 뿐 3 월31일 오전 3시 35분 구속영장이 발부되 어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는 어찌 박대 통령 개인에게만 돌릴 수 있겠는가? 나라 전체의 책임을 느껴야하지 않겠는가? 박 대통령은 생각지 못한 온갖 불명예를 뒤 집어쓰고권좌에서파면당했다. 그러나 대통령도 거대한 시대 구조의 한 부분으로 모든 원인을 대통령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 이다. 지난 4년의 국가 실패엔 수많은 공 범과 조연들로 들끓었다. 청와대 참모들 과 친박 핵심들이 권력에 기대여 호가호 위(狐假虎威)하면서 누구하나 대통령께 직언하지 못했다. 이러한 측근들이 박근 혜대통령을더욱망쳐놓고말았다. 정윤회 문건이 나돌고 최순실 일당이 암 약해도 마냥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 에 야당은 더욱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고 주 장했다. 그러나 야당 역시 국가 실패의 책임 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경제활성화 개혁 법안들을 그렇게도 말목 잡는 것이 야당이 기 때문이다. 정책 딱지에 박근혜표만 붙으 면 훼방부터 놨다 세월호 이후 온갖 음모론 에시달려국정리더쉽을발휘할수없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이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비극의 극치이다. 우리는 무너진 지난 시대 잔해 위에 무엇을 다시 세워야 할 것인지는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우리국민의몫일수밖에없다. ◎박 전 대통령 검찰 포토라인서 29자 입장표명=지난 3월21일 검찰 특별수사 본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뇌물 433억 원을 수수하고 권한을 남용해 최순실씨 등이 국정과 야권에 개입하도록 한 혐의 의 피해자로서 소환조사했다.이날 박 전 대통령은 오전 9시23분 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포토라인에 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 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 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 정 등을 통해“재단은 전경련이 주도해 만든 것, 삼성 등을 봐줄 생각은 손톱만 큼도 없었다” “블랙리스트를 만들도록 지 시 한 적 도 보 고 받 은 적 도 없 다 ”고 혐 의를 부인했다.검찰 조사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유지했다. ◎검찰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청구 및 발부=지난 3월27일 검찰특별수사본부 가 박 전 대 통 령 에 대 한 사 전 구 속 영 장 을 법원에 청구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 통령 대표인단은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의 공범도 아니고 뇌물 받은 일도 없다며 탄핵이후 자택에만 머물고 있는 데 증거인멸 운운하는 것도 말이 안 된 다고 했다. 그러나 3월27일 오후 서울중 앙지검 영장전담판사 강부영(43)은 구 인장을발부했다. ◎박전대통령구속수감= 3월31일 새 벽 4시45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구 치소에 구속수감 됐다. 전날 8시간 41분 에 걸쳐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했던 강부 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이날 새벽 3시3분 “주요혐의가 소명되고 증 거 인멸 염려가 있어 구속사유의 필요 성, 상당성이 인정 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 소 추 와 특 검 및 검 찰 수 사 과 정 에 서 일 관되게 “나는 몰랐다” “사적 이익을 취 하지 않았다”며 정치적 법률적 책임을 부인했지만 헌재와 법원은 이를 인정하 지 않았다. 결국은 대통령직 파면과 구 속이었다. 박근혜전대통령의정치역정 박 희 학 븣숭덕전前참봉 2017년5월31일 수요일 11 (제125호) 독자마당 東苑 朴 鎭 錫 21세기 중반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 리 현대인들은 지금 초(超)연결, 초 (超)융합, 초(超)지능으로 대변되는 뉴로(Neuro)혁명 시대를 앞두고 전혀 예측 불가능한 미래(未來)와 직면하고 있다. 전국의 500만 우리 박씨 종친 가 족 들 도 이 미 주 지 하 듯 이 오 늘 날 알 리 바바(Alibaba), 에어비앤비(Airbn b), 우버(Uber)등 세계적인 혁신기업 (革新企業)등은 모바일 인터넷(Mobil einternet),컴퓨터의유비쿼터스(Ubi quitous), 인공지능(AI)과 기계학습 (Machine Learning)을 통해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가치”(New Valu e)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와 같이 과학 기술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탄생한 새로운 파괴적 혁신(革新)은 세상을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바로 지 금 우리들 앞에 세상을 격변시킬 대전 환(大轉換)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엄연한현실이라고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를 관통하는 새로운 화두(話頭), 즉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 의미래는우리들이이를어떻게대비(對 備)하고, 어떠한 자세로 맞이하며, 또한, 사회적,경제적,개인적으로 어떻게 대응 (對應)하고, 역할을 할 것인가에 따라서 그성패가달려있지않을까믿어진다. 최근 기후변화,자원부족 등 급속히 변 화하는 세계환경에서 와해적인 기술혁 신(技術革新)과 기술융합(技術融合)이 가져올 엄청난 변화가 발생하는 시대에 는 막강한 힘을 가진 빅데이터(Big Dat a)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소외되는 양극화(兩極化)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 으로생각된다. 따라서이와같은현상을 가능한 한 완화시키고, 적극적으로 해결 하기 위한 솔루션(Solution)에 대한 논의 (論議)가우선필요하다고판단된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주요 기업과 사회에 가져올 파괴적 혁신(革 新)과 속도(速度)를 고려해 봤을 때, 지금 우리는 그 흐름에 반드시 동참해 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필자 는 본란을 통해 이에 적절히 대응(對 應)할 자세와 역할(役割) 등을 향후 3 회에걸쳐고구해보고자한다. 먼저 제4차 산업혁명(TheFourth In dustrial Revolution)을 명확하게 이해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이에 대한 역사 적 의미와 정의를 간략히 살펴본다. 우 리인류는지금으로부터약1만년전,수 렵어로와채집생활을해오며일정한지 역에 정착하면서 농경생활(農耕生活) 이라는 첫 번째 큰 변화를 맞는다. 즉, 농업혁명(農業革命)은 생산, 운송, 의 사소통을목적으로하는인간과가축의 노력이맞물려발생했다고볼 수있다. 이와 같은 농업혁명이후,18세기 중반 부터 일련의 산업혁명(産業革命)이 발 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8세기부 터 19세 기 중 반 경 에 걸 쳐 발 생 한 제 1차 산업혁명은결국,철도건설과 증기기관 의발명을바탕으로기계에의한생산을 이끌었던 것이다.또한,19세기 말에서 2 0세기 초까지 이어진 제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생산 조립라인의 출현으로 대량 생산(大量生産)을 가능하게 했으며, 19 60년대에 시작된 제3차 산업혁명은 반 도체(半導體)와 메인프레임 컴퓨팅(M ain Frame Computing), PC(Personal Computing), 인터넷(Internet : 1990년 대)등의발달이주도했던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컴퓨터 혁명” 혹은 “디지털 혁명”이라고도 말한다. 이러한 세 가지의 산업혁명 과정을 살 펴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제4차 산업 혁명의 출발시점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하 는 제4차 산업혁명은 구체적으로는 유 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Ubiqutous & Mobile Internet)이 더욱 저렴하면서 더욱 작고, 강력해진 센서, 인공지능 (A I )과 기 계 학 습 등 이 바 로 제 4 차 산 업혁명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도 있다. 한편, 제4차 산업혁명은 단순 히 기기와 시스템을 연결하고 스마트 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훨씬 넓은 범주 까지 아우른다. 즉,유전자 염기서열분 석(Gene Sequencing)에서 나노기술, 재생가능에너지에서 퀀텀 컴퓨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거대한 약진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모 든 기술이 융합하여 물리학,디지털,생 물학 분야가 상호교류하는 제4차 산업 혁명은 종전의 그 어떤 혁명과도 근본 적으로궤를달리한다고볼수있다. 과거의 산업혁명보다도 제4차 산업혁 명에서 출현하는 신기술(新技術)과 광 범위한 혁신(革新)은 더욱 빠르고 폭넓 게확산중에 있다고 볼수있다. 그러나 기술혁신의수용정도가사회발전을결 정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제1차 산업혁 명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므 로 정부 당국과 공공기관, 민간부문 모 두 각자의 역할을 잘해 나가야 하지만 특히 국민들이 산업혁명을 통해 얻게될 장기적인 혜택(惠澤)을 자각하는 것이 무엇보다중요하다고판단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앞선 세 번의 산업 혁명과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서 강력 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역사 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이 보다 더 효과 적이고 응집력있게 실현되는 것을 가 로 막 는 다 음 과 같 은 두 가 지 사 안 이 우 려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제4차 산업 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재고해볼 필요성이 큰 데 반해, 전 분 야 에 걸 쳐 요 구 되 는 리 더 십 의 수 준과 현재 진행 중인 이 급격한 변화에 대한 이해력은 현저히 낮다는 점을 문 제점으로지적해볼수있을것이다. 그 결과 국가적, 세계적으로 혁신의 전파를 관리하고 혼란을 완화시키는 데 필요한 제도적 체계가 부족하거나, 최악의 경우 아예 부재한다는 것이 현 실이다. 둘째, 제4차 산업혁명이 제공 한 기회(機會)와 도전(挑戰)의 기틀을 형성하고, 일관성을 갖춘, 긍정적이고 보편적인 다양하고 광범위한 개인과 집단의 논의(論議)가 아직은 부족한 것이현실이라고생각된다. ※ 필자 연락처 : 010-5274-9885, E- mail : dong-wonp@hanmail.net 븮제4차산업혁명븯대변혁의본질(本質)과우리의대응(對應) 자세 - 오늘날 현대인들은 21세기 초에 제4차 산업혁명이 출현함으로써 이미 대혁신(大革新)시대의 출발점에서 생활하면서 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 넷, 인공지능(AI), 로봇기술, 기계학습(Machine Learning)등의 “초기뉴로 혁명”단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바,금후 본격적으로 구현될 제4차 산 업혁명 시대에서는 단순히 기기와 시스템을 연결하고, 스마트화 하는데 그치지 않고, 유전자(遺傳子)염기서열분석에서 나노기술, 재생가능 에너 지에서퀀텀컴퓨팅까지여러산업기술이융합(融合)하여혁신(革新)과약 진(躍進)이발생하는제4차산업혁명시대가올수있기때문에 정책당국 자들은대변혁의본질(本質)에더욱고민하면서정책을마련해나가야- 븡신라오릉보존회(박씨대종친회) 수원시지부상임고문 븡종친회보븮라정븯발행인겸편집인 븡본보논설위원 1776년은 병신(丙申)년으로 재위 52년 째를 맞은 영조대왕이 83세라는 장수를 누리고 붕어한 해였습니다.이미 죽은 때 가 오래이던 사도세자는 왕위를 계승하 지못하고,마침내25세의세손정조가임 금의 보위에 올랐습니다.이해에 다산 정 약용은 15세의 새파란 나이로 서울 회현 동의 풍산 홍 씨 댁으로 장가들어 아내를 맞이하고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조가 재위 1년을 맞는 1777년은 정유 (丁酉)년으로 16세의 다산은 꿈과 희망 이가슴에부풀어오르던때였습니다. 기다리다 지치고 지쳐서 지루하기 그 지없던 52년의 장기집권에 신물 나던 백 성들에게 샛별만큼의 맑음이 보이던 무 렵입니다. 노론과 소론이라는 당파가 권 력을 독차지하고 그 이외의 모든 당파는 소외되어 권력에서 배제된 때인데, 노론 벽파의 음모와 비계로 생죽음을 당한 아 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에 한을 풀 지 못한 정조의 등극은 권력의 변동을 예 견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정조 의 등극 후 제일성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 들이다”라는 폭탄선언이 나오자 기를 제 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가던 남인들은 새 세상에 대한 기대를 크게 지닐 수 있었습 니다.남인가계에속하던다산또한큰꿈 을 꾸고 있었음은 너무나 당연했습니 다 . 다산의 연보인 『사암선생연보』 16세 항 목의 기사에 “성호 이익의 유고를 처음으 로 보았다. 이때 일세의 후학들이 성호 선 생의 학문을 조술(祖述)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다산도 이를 준칙으로 삼았다. 자식이나조카들에게항상말하기를‘나의 큰 꿈의 대부분은 성호 선생을 사숙하는 가운데 깨쳐진 것이 많았다’고 하였다”라 는 대목에서 보이듯 당시로서는 진보적이 던 성호 학문에 세상의 관심이 쏠리고 있 었음을넌지시암시해주고있습니다.노론 과 소론의 보수적 논리에 묶여 있던 사상 계의방향이남인계의진보적주장으로옮 겨져가고있음도보여주는대목입니다. 조선왕조27명의임금가운데가장오래 집권하고, 가장 장수를 누린 영조의 죽음 과 청년 임금 정조의 등극, 판치던 보수정 치가그래도조금은진보적논리로바뀌어 가던 즈음, 어쩌면 수구 보수의 구시 대 정권의 대통령이 파면 당하고, 그래도 조금은 진보적인 정치가 펼쳐지려는 오늘 의 현실과는 유사한 경향이 많았던 때로 보여 집니다. 새마을운동, 유신독재, 극단 의반공논리가민주주의를숨죽이게하다 가촛불의민심을반영하려는새로운정권 에 우리 모두가 기를 펴고 꿈과 희망을 지 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안보 장사와 친북좌파 타도라는 반시대적이고 반역사적인 불통의 정권과 그 부역세력과 는영원히결별하는새로운정치를국민들 은 바라고 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을 제 대로하고인재다운인재들을제대로등용 하여 먹고 살기에 걱정 없는 정치만 해주 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꿈과 희망 에 들떠 있는 국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헤 아려 더 이상은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기만을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정조의 치세 24년이 오늘에 다시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조와 다산이 손을 맞잡고 새 로운시대를열던그때가그립습니다. 정권이 바뀌는 무렵의 꿈과 희망 우리 朴性은 光明理世를 삶의 철학으로 삼아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살아가야 한 다. 시조대왕께서 제시한 통치철학이기 때 문이다.한사람한사람이밝은등불이되어 세상을밝게비치면그사회는밝아지고그 나라는발전하고성장하는나라가된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정신문화적 측면 에서시급히해야할일이있다.바로청소년 인성진흥과 사회적인 인문정신운동이다. 정부에서도 이 점을 중요하게 인식하여 인 성진흥법과 인문학진흥법을 제정하여 시 행하고 있다. 바로 인성교육진흥법(2015년 7월시행)과“인문학및인문정신문화의진 흥에관한법률”(2016년8월시행)이다. 四書三經 중의 하나인 大學에 物有本 末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本과 末이있는데,本(목표)을분명히세운후 에 그 에 맞 는 末(수 단 )을 강 구 해 야 한 다 는뜻이다.필자는시조대왕의광명이세, 즉 사람이 밝은 빛이 되어 세상을 잘 관 리한다는 삶의 철학을 구현할 本으로 孟 子가 말씀한 세 가지 분별력을 제사하고 자 한다. 이 세 가지 분별력만 확실히 몸 과 마 음 에 체 화 한 다 면 사 회 적 으 로 괜 찮 은‘인간’이될수있다고생각한다. 첫째는 인금지변(人禽之辨)이다. 내 가 상대하는 그 사람이 사람인지 짐승인 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리고 자신도 어디에 속하는지 알아서 짐 승이라고 생각되면 사람이 되려고 노력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만능에 사로 잡 혀 욕 구 와 욕 망 중 심 으 로 살 면 짐 승 과 다를 바 없고, 도덕적 양심과 가치관 을중시하며살면사람이라는것이다. 둘째는 의리지변(義利之辨)이다. 내가 재물이나 권력을 취할 때 정당하게 취하는 것인지,사리로취하는것인지분별할줄알 아야 한다는 것이다.여기에서 의(義)는 공 의(公義)이고리(利)는사리(私利)이다. 셋째는 왕패지변(王 之辨)이다. 덕으 로 사람을 대하는지,힘(완력)으로 사람을 대하는지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덕으로 사람을 대하면 왕(王)이라 하고 힘으로 사 람을대하면패(覇)라고한다.바로리더의 기본덕목이다.힘과완력,금력이라는패를 앞세우는군주는나쁜사람이기때문에맹 자는그런사람은군주의자리에있을자격 이 없으니 방벌하라고 까지 했다. 人禽之 辨, 義利之辨, 王堉之辨의 세 가지 분별력 을 本(목표)으로 삼는다면 이 本을 구체화 하는 末(수단)을 어디서 가져와야 할 것인 가?바로배움과수양에서가져와야한다. 첫째는 갖고 있는 지식을 지혜로 전환해 야한다.지식은지식일뿐이다.상황에맞춰 언 제든지 꺼내 쓸 수 있으려면 지혜 로 전환되어 자기 것이 되어 있어야 한다. 지식을 지혜 로 전환하려면 그 내용을 화두로 삼 아 곰곰이 생각해 보는사유를해야한다. 둘째는 다양한 체험을 하며 자연과 사 람과 접촉하며 느끼는 것이다. 재능봉사 를 포함한 자원봉사는 사회를 위한 유익 한 활동이고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활동이 다.바로 홍익인간이 되는 지름길이고,저 명한 심리학자인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 의 욕구5단계 중 제3단계인 사회적 욕구 를 충족하는 핵심방법이다. 다양한 자원 봉사와 체험을 진정성을 갖고 할 때 인간 은성숙한다. 셋째는매일저녁잠자기전에그날있 었던일을조용히눈을감고반성하는일 이다. 一日三省이라고 세 가지를 반성하 면 좋다.내가 일을 할 때 또는 남을 도와 줄 때 정성을 다 했는가? 친구에게 신뢰 를 잃을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가? 사람들을 지도하거나 가르칠 때 최선의 준비를 갖춘 후에 하였는가? 지혜화, 체 험,반성은심체신행삼법이다. 시조대왕의光明理世는人禽之辨,義利之辨,王 之辨의세가지분별력 실천으로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유준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3)588-7300 FAX(053)581-0067 뱚구독료년3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42612 대구달서구달구벌대로1221(이곡동538-2)성창B/D5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