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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5월31일 수요일 10 (제125호) 종합 박재훈 회장은 교직에 몸담아 후 학양성에 매진하 였고, 퇴직 후에는 부모님의 유지를 받들어 선조의 유 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문화재 지정을 받았으며, 위선사업을 통해 종중의 발전과 사회공헌을 통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아버 지 상 을 선 보 이 고 있 어 가 정 의 달 을 맞 아 찾아가본다. 박재훈 회장은 관조 사벌국왕의 후손 으로 고려조 찬성사 상산부원군(휘 여) 이 파조가 된다. 그리고 조선 중종조 기 묘사화 때 생원으로 궐문에서 기묘사화 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을사사화때는 사 간(司諫)의 몸으로 동료를 거느리고 유 언비어를 배척하였고,조정 중학회의(中 學會議)때는 팔뚝을 걷어 부치고 고함을 쳐 간흉의 무리가 의기소침해지게 하는 기개를 보인 필재 박광우 선생의 15대손 이다. 1935년 충북 청원군 남이면 석실리에 서 성 균 관 전 학 및 신 항 서 원 등 5 개 서 원 의 원장을 역임한 은암 윤섭 공(隱菴 允 燮公)과보성오씨의삼남으로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 읽기를 좋아 하여 선친이신 한학자 은암공의 교육열 과 그 이념 아래서 청주사범학교를 졸업 하고 향정, 부강국민학교에서 인재양성 에 정성을 다하다 군복무 후 영재들의 기 초교육을 위해 부강국민학교에 복직하 였고, 외천초등학교에서 10년의 교직생 활을 마쳤는바,그동안길어낸수백의 제 자들이 항상 운집하고 있다. 엄숙하고도 인자하신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위엄속 에서도 후학들에게 베푼 학덕의 결실이 아닌가싶다. 1968년 동양상사를 설립하고 오늘에 까지 40년간을 경영하여 탄탄한 기업으 로 육 성 해 놓 았 다 . 그 것 은 좀 더 넓 은 사 회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물심양면 으로공헌(貢獻)할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박 회장의 깊은 뜻과 정성은 문화재 보 존부터 실천에 옮겨졌다. 즉 1967년 2월 정절공(貞節公) 필재 박광우 선생의 유 택 면봉(緬奉,移葬)시 출토된 일괄 유물 을 정성껏 수습하여 1981년에 정리를 마 친 후 1982년 12월에 문화재 제6호로 묘 소는 1987년 3월에 문화재 제71호로 각 각 충청북도로부터 지정받았다. 이는 10 여년에 걸친 막대한 정리보존 비용을 자 비로 충당하며 노력한 결과로 숭조정신 을 가 히 엿 볼 수 있 다 . 아울러 양친(兩親)에 대한 효성은 물 론형제의우애까지돈독하였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먼저 간 형들 을 대신한 실질적인 장남역할을 다 해오 며 부모님 산소에 모든 석물을 설치하고 장형(長兄)과 중형(仲兄)의 묘소까지도 석물을 완비하여 드렸으며, 유산 상속된 전답은 선친(先親)의 위토로 보존 등기 하여 봉납(奉納)하였고, 선친 은암공의 역저(力著)인 동국오천년사요(東國五 千年史要)와 시문(詩文), 사조(詞藻)를 종합하여 문집 4책(冊)을 발간하였음은 실로타의모범이되고도남을듯하다. 문중에 있어서도 찬성공 중중의 기금 조성으로 종회기반을확고히하였고,조 직강화로 종회를 원활히 운영하여 노소 (老少) 종문(宗門)들을 동참케 하였으 며, 사유건물을 종회 사무실로 제공하고 사당,재실등모든시설을완비하였다. 필재 박광우 선생의 사당인 숭인사(崇 仁祠)를 국비로 신축 정비 성역화하고, 강릉의 필재선생거사비각(筆齋先生去 思碑閣)을 국비로 이전 중수하였으며, 찬성사 상산부원군 이하 8位 선 조를 봉안한 경모단(敬慕壇)을 강외 쌍청에서 수대 필재선생 사당경내로 이전 완공하고, 남 이 석실에 경유공(景裕公)의 사 당 숭덕사(崇德祠)와 10대조모 파평윤씨의 정려문을 신축 봉안 하였다. 은암공 사적비 건립에도 충청 북도 유도회와 더불어 크게 공 헌하였던바 유능하고도 명망 있 는 인품은 널리 퍼져 칭송이 자 자했다. 2004년 9월 상주박씨대종회 정기총회에서 사벌국왕릉보존 회 총재 겸 대종회장으로 선임되어6년 7 개월의 임기동안 왕릉 성역화사업을 주 도하면서 문화재청 국비보조금14억, 일 반국비 6억2천만원, 특지성금 1억8천만 원 등 총22억원을 집행하며 청주에서 상 주 사벌면까지 거의 매일 오가다시피 하 면서 사벌국왕의 영정을 봉안한 영사전 신축 및 모루 금단청, 사적비, 재사(齋 舍), 팔각정 건립과 왕릉주변 소나무정 리작업 등 모든 공사를 성공리에 준공하 여 왕릉이 위대하고도 장엄한 모습으로 변모함에 따라 왕릉과 상주(상산)박씨 의위상을크게드높인바있다. 박 회장의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 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 덕성은 사회에 널리 알려져 각계에서 중 책을 위촉하기에 이른다. 법무부의 갱생 보호회 부회장과 청소년선도위원, 바르 게살기운동 충북협의회 이사, 청주사범 병설중학교총동문회장,상주박씨대종회 부회장, 상주박씨찬성공파종회장을 역 임한바있다. 이와 같이 역무(役務)를 누구보다 착 실히 수행하였음은 법무부장관 표창, 대 전지방국세청장 표창, 내무부치안본부 장 표창, 충청북도 도지사 효자상, 대한 노인회 충청북도지부장 효자상, 청주시 장 효자상,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회장 표 창,등의 수상사실과 2005년 필재 선생의 사우 숭인사 경내에 찬성공파 종회에서 세운 공적비와 2010년 청주사범대학교 제10회 남들회에서 세운 공적비 등에서 쉽게알수있다. 2002년에는 사재를 출연하여 남이초 등학교에 아호(雅號, 龍齋)를 따 용재장 학회(龍齋奬學會)를 설립하였고, 남이 초등학교 총동문회장 10년 재임 중에는 영재배출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이와 같 은 박 회 장 의 가 풍 을 본 받 기 위 해 1 9 9 7 년 10월에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상주박 씨 필재공, 은암공의 금석문 탑영(榻影) 특별전을개최한바있다. 박 회장은 부인 유정자 여사와의 사이 에 3남을 두었는데 장남 정석(正錫)은 청주대 경영학사로 현재 동양상사 대표 로 가업을 잇고, 차남 은석(銀錫)은 서 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검찰청 차장검 사, 금융감독원 감찰국장을 역임하였 고, 삼남 찬석(贊錫)은 성균관대를 졸 업하고 신한은행 본점 차장심사역을 맡 는 등 모두 사회 지도층의 반열에 올라 있다. 박 회장을 처음 대면한 것은 2007년 창간에서부터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의 욕 만 앞 서 있 던 필 자 를 자 식 대 하 듯 자상하게 이끌어준 당시를 회상하지 않 을 수 없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특히 맑 은 심성은 처음 대하는 이로 하여금 금 방 정 을 느 낄 수 있 어 오 래 도 록 우 리 곁 에 머 물 면 서 나 침 판 이 되 어 주 길 기 대 해 본다. ■종친탐방븣븣 상주박씨대종회박재훈前회 장 상주(상산)박씨대종회장재임중완공한영사전에서행사장을찾은내외빈에게설명하는박재훈회장. 숭인사경내에2005년세워진박재훈회장공적비. 2011년박병순대종회장(左)은박재 훈회장에게타고난숭조 정신으로 왕릉성역화 사업을 성공리에 마치는 등 지대한 공 을 영구히 기리기 위해 공로패를 전달하고 고마움을 표시하 고있다. 박재훈회장 교육자로서의길걸어 선조의유품문화재등록으로... 타고난숭조심엿보여 종중의발전을위해온몸바쳐 ‘오블리스노블리제 ’실천사회공헌 자녀들훌륭하게키운자상한아버지 조성중인천왕대불.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반드시 서원(誓願)을 세워 야 하는데 그 서원이 성취됨으로써 부처가 됩니다.서 원을 세울 때는 반드시 자신의 이익과 중생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서원의 원칙은 불교 의 이념인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데 있습니다.자신의 이익이 곧 중생의 이익 이며 깨달음을 얻는 일인 동시에 중생을 구제하는 일 이기 때문입니다.....』박종근 현종의 불사의 각오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중장비의 굉음 속에서도 부처 님의 용안(容顔)이 살포시 드러나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선사한다. 천왕대불 조성은 2002년도부터 2025년을 완공목표 로 50m높이의 좌대에 108m입상 석가모니불로 세계 에서 제일가는 조각품을 조성키로 하고 이 대불은 어 깨부분 폭이 약 40m, 돌출부분 약 20m의 부조상으로 현재까지의 공정은 약 30%정도이며(코 부분까지 완 성)기투자금액은60억원정도이다. 그런데 최근 채석장의 수지(收支]가 맞지 않으면서 어려움에 봉착했다. 지난해 8월 경상남도로부터 조건 부 승인을 받은 후 전문가(공대교수)의 의견서와 도 면을 새로 작성해야 하는 비용 3천만원을 충당치 못 해답보상태에있어안타깝다. 천왕대불 불사를 일으키고 있는 박종근 현종은 당 초 2025년 완공시 까지는 500억원의 불상조성비용과 500억원의 사찰조성비용 외 한 장에 50만원을 호가하 는 팔만대장경과 소조각등 예산은 어림잡아 1000억 여원이 훨씬 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작되었는데 고 작 3천만원 때문에 발목이 잡힐 줄 몰랐다며 한숨을 내쉰다. 천왕대불을조성하고있는함양군마천면의현장은 지리산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어 천혜의 조 건을 갖춘 명소로 지금까지 많은 불자들과 관광객이 줄을잇고있다. 박종근 현종은 1949년 9월 3일 경남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에서 시조대왕이신 혁거세 할아버님의 69대손 으로 태어나 1973년부터 태광산업이라는 상호로 마 천석 채석장을 개발하여 현재는 마천석재라는 이 름 으로 채석장과 석재가공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 까지 채석을 하면서 훼손한 지역에 자연친화적이면 서도 기념비적인 조각품을 조성하는 사업을 늘 고민 해왔다고 한다.그리고 그 근간에는 그의 일생을 온전 히 돌봐주신 큰 산의 은혜에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고 자 하는 마음이 늘 짓누르고 있었기에 서원을 다짐하 고 야심차게 뛰어든 사업이 천왕대불 조성과 사찰건 립이다. 예부터 불교국가들에서는 앞다투어대불을 완성하 여 불자들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았고 그 불상들이 지 금에 와서는 관광의 명소와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 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찰에서 불자들의 불심을 모 아 대 불 을 모 시 는 것 을 염 원 하 고 있 기 도 하 다 . 혹자는 최상품의 오석(烏石)을 생산하는 채석장만 운영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텐데 라고 말한다. 그러나 종근 현종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는 중생을 제도하는 불교의 이념을 이어가고, 낙후된 경남지역의 관광 창출로 지역사회 발전을 함께 이루 는게 채석으로 인해 훼손된 자연에 대한 보은이라고 한다. 박종근 현종은 금적적인 어려움 에 봉 착 하 여 있 음 에 도 자 기 가 갖 고 있는 모든 것을 내 놓는다.지난 2009년 밀성박씨 함양군 종친회의 숙원은 50여년을 이어오면서 종중 을 위해 헌성 하신분들의 헌성비 를 세워야 하는데 수 많은 종현들 의 이름을 새기려면 돌의 크기가 마 땅 할 것 같 지 않 아 두 개 또 는 세 개정도 연결해서 작업을 하려고 준비 중에 있을 때 선 뜻 나서 가로 572cm, 세로 120cm, 폭48cm로 오석을 기증하여 헌성비를 세움으로서 숙원을 풀었고, 2017 년 현재 밀성박씨대종회에서 추진중인 헌성비로 공 적비에 사용되는 오석을 기증키로 하고 채석에 온 정 신을쏟고있어감사할따름이다. 지리산 천왕대불(智異山天王大佛)과 사찰(천왕 사) 불사의 꿈이 함께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해 본 다.(박종근 055-962-5252 fx,055-962-5012. hd,011-6 60-5089)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주(註) 서원(誓願) -사회나 종교에서 일상적으로 요구하는 정도를 넘어선 특별한 의무에 자기자신이 나 가족 또는 지역사회의 구성원을 바치겠다는 뜻으 로자발적으로행하는성스러운약속. ■석가탄신일특집 불사(佛事)현장을가다 븣븣 천왕사(천왕대불) 천왕대불및천왕사조감도. 50m높이의좌대에108m입상석가모니불 로세계에서제일가는불상븣전문가의견 서와도면제작비3천여만원에발목잡혀 박종근현종 박응신前전교 박문수前전교 박 봉두前전교 전남 해남향교 전교에 박천하 전교 가 지난 3월 3일 취임하면서 해남지 역 유풍의 진원지가 무안박씨 해남파 에있음을증명하고있다. 무안박씨 해남파는 군수공(휘 종 정)께서 영암군수직을 버리고 입향, 500년의 토호성씨라 할 수 있다. 근세 (生存)에 이르러 응신(29世, 장촌문 중), 문수(32世, 원호문중) 전 대종회 장, 봉두(31世, 연구문중) 현종에 이 어 천하(31세.연구문중)전교의 취임 은 지역 유림계에서도 이를 방증할 수있다할것이다. 해남파 입향조 군수공은 연산군의 폭정으로 극도로 불안해지고 혼미한 정국에 백성을 구하고자하는 충의와 애민정신으로 영암군수직을 사직하 고 영암군의 관할지인 해남현 금강동 (金剛洞) 아래 부격동(富擊洞)에 은 거하여문풍을일으켜,증손(曾孫)취 죽헌(翠竹軒) 백응공(伯凝公)은 155 5년 을묘(乙卯)사마시(司馬試)에 합 격하셨으며 학덕이 높아 사우(士友) 들의 천거(薦擧)로 명종조에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임명되셨고 진 원현감(珍原縣監)에 배명(拜命)받았 으나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歸鄕)하 여 금강동에 정사(亭舍)를 짖고 후진 들의 교육과 도의(道義)를 강마(講 磨)하고 가례도감(家禮圖鑑)을 저술 하는 등 향중에 거유(巨儒)로 추앙받 았기에 후손들은 선조의 유지를 받들 어 지금에 이르고 있어 해남지역 유 풍의맥을잇고있다. 박천하 전교는 취임사에서 “우리 해남이 예의를 잃지 않고 경로효친을 알고 실천하는 고장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해주시면서 향교 발전에 지대 한 공로가 인정되는 선배 유도인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또한 박 전 교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통해 사 문진작과 이들을 통해 앞으로 우리향 교를 짊어지고 나갈 훌륭한 유림으로 키우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 라고밝혔다. 해남 향교는 해남읍 수성리에 있으 며,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 육과교화를위하여창건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에 전조하는 등 수차 례에 걸쳐 중수하여 현존하는 건물로 는 3칸의 대성전, 내신문(內神門), 4 칸의명륜당,6칸의동재(東齋)와5칸 의 서재(西齋), 4칸의 사마재(司馬 齋),4칸의양사재(養士齋)및 교직사 (校直舍)·제구실(祭 具室)·고사(庫舍)· 외신문(外神門) 등 이있다. /자료제공 박주화 전(前)해남파청년회 장 해남향고제49대박천하 전교취임 무안박씨해남파입향조군수공이후줄줄이전교맡아유풍진작시켜 박천하 전교가 지난5일 청년회주최 문 화체육행사에서축사를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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