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page


211page

약산 김원봉과 석정 윤세주의 어린시절과 항일운동 - 김원봉 선생이 석정 윤세주 열사를 추모하며 민족혁명당기관지 「앞길, 1943.6.15자」에서 밝힌 글, 지면 구성상 일부 중략했음. 약산과 석정의 어린시절 - 석정동지의 원명은 윤세주이다. 그의 고향은 나의 고향인 조선나라 경상남도 밀양군 성내이며 그의 집과 나의 집은 거리가 불과 지척간이었다. 우리들은 어려서부터 한곳에서 놀고 한곳에서 자라났다. 그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이며 우리는 8,9세부터 한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 때 우리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던 7,8명의 어린이 중에 그는 나와 특별히 친밀한 사이였다. 조국이 국권을 상실할 망국의 당시 그는 11세, 나는 13세였었는데 그때 소위 "일한 합병"의 소식을 듣고 우리 어린이들은 한곳에 모여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었다. 이때부터 우리 어린동무들은 애국사상에 완전히 도취되어 일제의 일본어과를 공부하지 아니하였다. 망국 후 제1차 일제 적의 소위 "천장절"을 당하여 우리 어린동무들은 일장기를 변소의 뚱구덩속에 꽂아서 "천장절" 경축을 반대를 하는 행동을 취한바 학교당국의 일본인 교장은 우리를 위협하고 심지어 우리를 구타 고문하였으나 우리들은 시종 부인하였으므로이 사건의 진상은 영원히 밝혀지지 아니하였다. 동화중학교 시절에 그와 나는 여러 동학들을 향하여 애국사상을 적극 고취하여 학교내에서 애국단체인 "연무단"을 비밀리에 조직하였다. 신체를 단련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뜨거운 강변사장위에서 풋볼을 찼고, 겨울 아침 상학전에는 등산과 냉수욕을 하였다. 동화중학 2개년 동안에 그와 나는 위인전기, 조선역사 지리, 육도삼략 등의 책을 제일 많이 애독하였는데 그 당시 일본이 조선역사를 읽는 것을 금지하였으므로 우리들은 비밀리에 호상전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