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page

국 뉴욕 인터처치샌터에서 열린 상징적 낀간법정인 ‘코리이· 국제전번 재판’에시 수식검사로 나선 플라크 전 미국법무장관은 ;미국은 하국전쟁 당시 3백만 명이 념논 만간인올 학살하는 둥 1없5년 해방 이후 2001년까지 세제인런힌장과 조약, 각종 국제규약 및 협정, 미국과 한국, 북한의 법 둥올 모두 위반하며 각종 범최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민간전범재판을 주도한 ‘미군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진민족특별조시위원회’는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충 북 노근리 이외 남한에서 ÔO여 곳, 북한에서 황해도 은율 등 1백여 곳에서 저질러졌다’고 주 장해 클라크의 3백만 학살을 뒷받침하는 한편 북한에서도 대규모 학살사건이 있었옴을 시사 했다.낀) (6) 또한 보도연맹회왼 이외 경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들이 많다 . 애를 틀면 , 1\)1()년 9월 21일 (음역 융 7월 29일) 오후 6시 종 불갑산 공비토벌 작잔에 참가했다가 귀대하던 합평경 찰서 유격토낼예 소속 경찰병력이 함평읍 진양리 양렴미-올 앞에서 차령펑크 수리차 대기 중 주민 장낙규 등 4 1 정을 공비로 오언하여 사삼한 다음 마을을 수색하여 30여 명을 함녕경찰서 로 연행했다가 다음 날 마을 앞 양립저수지 변에서 장갑석 -장수열·장규식 등 28명을 다시 학살했다. 경찰은 이 민간인 학살을 불갑산 꼼비 토벌이었다며 진과로 보고했다. 피해주민들 S 함평읍 함평리 산성매 속칭 쩍쭉재애서 함평경찰서의 지시를 받고 야경(夜警)보초룰 서 기 위해 죽창을 틀-고 마을 앞에 집결 중이었다 25) 또한 최근 고양시 긍정팔양띤학살희생자유 족회는 1950년 10월 고양시 한현몽 고봉산 금정굴 폐핑 에서 1천여 명 으로 추산되는 양민들 이 학살된 것은 이무영 경찰서장 등 경찰과 특수단체가 저지븐 사건이라는 운제듭 제기하고 나섰다26) 그리나 이 밖의 상황은 아직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7) 수꽉 후 우익진영에 의해 부역자에 대한 학살이 다수 자행되었디. 고양시 ‘금정필 양민 학살시건’은 경잘이외 우익단체에 의 한 부역자 학실·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7) 또한 1951년 1.4 후퇴 직후인 1웰 6.7.8얼 3일 동안 1950년 12훨 18일 걷성된 향도방위 특공대원 틀은 설-기피하게 부역했거나 동조했댄 60여명을 룹잡아 강화대교 옆 갑꽂 나루터와 옥립리 옥-제 갯벌에 세워 놓고 사삼한 후 시체를 바다 물에 흘려보냈으며 이들은 2원 말까시 모두 3 백여 영을 학살했다는 주장이 유가족 측에 의해 제기되 어 있다. 이는 1950년 11월 13일 국회 가 제정한 「부역행위 특댄처리법」보다 혹독한「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조 차 적용하지 않고 일방직으로 겸창 ·군·우익단체에 의해 무법적인 부역자 학살이 자행되었음 을 의미한다. 이 비상조치령은 한국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 대통령 긴급명령 제 1 호로 공포했었다 29) 23) 노근리 사건 보도이후 없n년 10월까지 한국전쟁 진후 미군어‘ 의한 민간인 핵상파 관린왼 띤원 61건이 국방부에 접 수했다(rõ한겨레신문J. 'ðXfJ년 m월 2씩일자) 2A) r한겨레신문J. 2001년 6월 2E일자 25) 21)1년 2월 7일, 항평읍 진양피 양휘마을 장관섭 , 장벙기 퉁 마을 주민둡의 증언; 힌평군의회 양민학삼진싱조사 특위, r합평양민학살피해진상초사실태보고서J. 19J8. 22. 1E깅 쪽 28)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영을 힘한 요입 r전쟁과 인권-학실의 세기를 넘어서J. 'ðXfJ. 85 쪽) : 서증석, 앞의 책, 616.&!O 쪽; 깜) 앞의 「진갱파 인권J. 85 쭉. 고양끔정공 양민학살희생자유측회 r제 &J 주기 고양유정궁양민학살회생자위령재-아, 긍정굳, 그 흥한의 세윌을 넘어」팝프렛: 박원순 r선쟁부역지 5민 명 어떻게 처리됐나J. 역사연구소 r역시비평J 9 호. 1000년 여릅호- 28) IDn년 4월 7일, 강화도양민학살유족회장 서영선 중언 : 최강문 r학상배후에 깅찰이 있었다J. 월간 r딸J. 1얹웠넌 7월 호: r경기일보J. aro년 l월 7일자: 서중석, 앞의 책 .610 쪽 29) 김동춘, 앞의 책. 165-172 쭉. - 7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