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page

[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남서부지역 일대에 주둔하면서 제11사단병력이 주로양민학삼의 만 행을저질렀다. 함평 학살부대는제11사단의 예하 5중대 병력이었다 중대장권중 옥대위가부대를지휘하고중대본부는장성군삼계변에두었으며 함 평군 문장에는 파견대가 주둔했다. 50년 12월 5일 권대위가 이끈 5중대 병력은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월야면 일대의 마을에 총격을 가하면서 들이닥쳤다. 군인들은 마을 이장을 시켜 ‘집 안에 한 명이라도 남아 았으면 다 죽으니 모두 ‘외치 채’ 로 나오라’고 주민들을 집합사켰다 영문도 모르고 마을 사람들은 속칭 ‘외치재’ 로 모였다. 군인들은 모인 사람들 중에서 젊은이들만 가려서총을싹죽였다. 군인들은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집집마다 볼을 질라 마을은 삽시 간에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월야면 정산리 동촌마을에서부터 시작된 초토화작전은 며칠 동안 계속되어 3개 면에서 약 500여 명이 무고하 게 죽어갔고마을은온통화염에 휩싸였다. 군인들은 양민을 죽이고 가옥을 불태우는 한편 밤마다 마을 처녀들 을 잡아다가 욕을 보이고는 아침에 내보내는 등의 만행도 서슴지 않 았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들은 밤에 양민들끼리 찬물 떠놓고 총각 처녀의 결혼식을올라는편법까지 동원하여 화를면해 보고자했다. 전남지방에서 있었던 양민학살 중 가장 대규모적이고 처참했던 함 평사건은 사기적으로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서울을 수복한 9 . 28 직후에 발생했다. 당시 후퇴하던 인민군 잔류병들과 빨치산들은 함평 군 소재 불갑산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군경과 충돋을 거듭하고 았었 다. 불갑산은 높이가 500여m밖에 되지 않는 산이지만 여러 개의 봉우 라가 겹쳐 있고 골짜기가 깊어 좌익세력은 이 같은 지형을 이용하고 자 산으로 들약갔다. 인민군 서남지구 사령부도 아곳에 자리잡고 있 10 힘평 앙민학살 I 129 - 5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