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page

[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威平양민학살사건 좌익아닌 좌익이 되어 산으로 압산한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좌익들의 협박에 못이겨 입산하게 된 朴모씨(59 . 당 시 19세). 그는 같은 마을에 사는 좌익분자들이 『산에 같이 가지 않으면 가족들을 몰살하겠다』고 협박을 해 하는 수 없 이 따라가긴 했다. 그러나 朴씨의 아버지는 항상 『좌익활동을 하게되면 살아 남을 수 없다.J1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빨치산활동 식량약탈 공산당조직 등을 강요했지만 그는 차일피일 미뤄오다 더 이 상 벼 틸 수 없어 그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양쪽귀에 물을 부어 넣었다. 며칠 후 귀가 붓고 고름이나 아파 죽겠다며 움직이지 않 았다 결휴값쩔는 그때 빨흔앞뾰씌효로권후갚를린지 않아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다. 국군들의 「대보름작전」이 았 기 며칠전 국군 수만명이 佛甲山을 습격한다는 소문이 산속 내에 떠돌아 다녔다. 예로부터 명산이라 불리웠던 佛甲山의 운명도 「대보름작 전」으로 인해 초토화 직전에 놓였었다. 드디어 작전이 개시되었다. 시제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개울 을 메웠다. 국군들은 佛甲山을 둘러싼 威平군 海保 羅山면 등 7개지역에서 포위해 돌진해 들어갔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굶 주림에 허덕이던 공비들은 우왕좌왕 갈길을 찾지 못했다. 온산은 시체로 뒤덮여 있었고 골짜기마다 피가 흘러내려 재울은 붉게 물들었다. 목격자들은 당사 흰명주옷을 입어 작 전이 끝날 무렵 산 전체가 거의 흰색으로 뒤덮혔다고 했다. 그 숫자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곳에서 억지로 끌려간 양 민들도 많은 희생을 치르고 죽어 갔다. 겁이 나 숲속에서 중은 듯 엎드려 있다가 국군틀이 진입해 - 5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