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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였어요 문장에 았던 5중대 파견대가 봉화불을 보고 ‘저 일대가 빨갱이 터 밭이로구나’ 했겠지요 다음날 날이 밝자 월악리로 쳐들어간 겁니다" 당시 17세의 소년으로 이 사실을 알았던 김재병씨는 그렇게 해서 무고한 부락민들이 많이 희생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아무리 군인들의 작전이라고 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 는 두 가지 대목을 지적한다. 하나는 증명까지 내보인 방위군 소위에 대해 서까지 아무런 경위도 듣지 않고 즉결 총살시켰던 5중대였으니만큼 도대체 작전목표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간단한 조사절차도 거치지 않 고 무작정 주민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했으니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 이다. 이 제5중대는 뒤에 불갑산작전에 투입되기도 하기만 그 전에 또다시 자 연부락 주민들을 대 량 사살하는 참극을 연출하고 다닌다. “총 맞고도 아직꺼정 사요 숨통은 성했응께” 5중대는 월악리학살을 자행한 지 놔뼈휴휴뀔편 1월 12일(음력 E월 5 일)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모평마을을 간습한다. 함평 문장에서 남쪽으로 약 2km 큰 길을 따라 내려가면 ‘쌍구령’이라는 곳이 나온다. 쌍구령에서 갈렴길을 따라 반 마장쯤 들어가면 모평이란 부락 이 자리잡고 있다. 1백 깨여 가구가 살고 있었던 이 마을은 파평 윤씨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던 부촌이였다. 잉} 낀}을에 살면샤 그날와 사건을 겪었펀 윤영근(70)씩쇠 증안을 통해 당 시의 정황을 알아보기로 하자 ‘연중대가 벌써 마을에 소개령을 내려놨었어요 그러니 연고가 있는 사람 들은 거진 다른 마을 친척집으로 가고 마을을 텅 비워놨지요 근디 5중대하 r 고 8중대가 장성에서 함평꺼정 왔다갔다 했는갑습디다~ 5중대가 명령을 해 158 - 4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