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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년] 주민들이 모여 었던 위쪽에 묘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3정의 기관총 이 놓여 있었다. 갑자기 권준옥 대위가 ‘엎드려’ 하고 소리쳤다. 구령이 끝나 기가 무접게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삽시간에 주민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나 동그라지기 시작했다. 신음소리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총소리가 맺었다. “아침밥 먹고 난 뒤였어요 군인들이 포위를 하고는 집에 불을 붙인 뒤 나오라고 합디다. 남산외로 사람들을 모았는디 우리는 조사나 할라고 그란 갑다 했지요 지금은 그 터에 앙켜1장이 들어섰는디 그쪽11다 모아놓드만 우 리 동네 정병춘이라는 젊은이를 불러세워서 패찜하다고 해썼더니 탕 하고 총질을 해서 그대로 죽여부러요 워매 겁이 럴킥 납디다. 갑자기 총소리가 천지를 흔들어랩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름서 팩팩 꼬꾸라졌어요 옆에 있 던 총맞은 사람이 나를 꽉 보듬고 넘어졌네요 그런께 송장들이 내 둥거리 로 막 뒤집어집디다. 총을 설맞아논께 사람들이 막 꿈지락꿈지락하대요” 2백여 벽의 마음주민들아 한꺼번에 몸삼닥하 남산외 학살현장에서4넓. 적으로 살아남은 정달모(61.함평군 월야면 월악리 내동)씨의 체험담이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일거에 학살시키기는 어려웠던지 군인들은 두 차례나 확인 사잘을했다고 한다. “총소리가 딱 그치드만 일어나라고 합디다. 빨리 일어나서 동네에 불끄고 가서 살라고 그래요 그때까지 살아 있던 사람들이 막 일어났어요 나는 송 장에 치여 꼼짝도 못했지요 그러더만 또 한 번 총을 지져댐디다. 그때 일어 난 사람은 다 죽었어요 그러드만 한참 뒤에 이번에는 꼭 살려주겠다고 험 시롭 하늘이 도와준 사람이고 명당집 자식이니 총에 안 맞은 사람은 일어 나라고 안허요 나는 일어날 생각을 안해부렀지요 가만히 누워서 정신을 놔부렀어요 근디 나중에 알고보니 두번째 일어났다가 총맞은 사람도 한 10명은 되았어요" 이날 학살현장에서 충을 맞지 않고 살아난 사람으로는 정달모씨 외에 이 상숙씨, 정연옥씨, 김분순씨 동 3명이 더 있었다. 현재 내동마을에 살고 있 는 검분순(65)씨의 증언을 들어보자. ‘니는 그때 스물여섯으로 시집와서 애기를 하나 났구만이라우. 젊은 사람 함평 155 - 4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