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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년] 모으고 았다- 앞서의 학살부락이었던 월야면 정산라 동촌부락에서 12월 6얼 학살현장으로부터 살아남아 문장으로 소개됐던 노인과 부녀자틀은 그 끔찍 했던 5중대의 등쌀에 아직도 진저리가 쳐진다고 했다. “문장에는 5중대 막사가 있었는데 소개된 큰애기(처녀)들은 남아나질 못 했어요 밤마다 큰애가들을 잡아다 욕을 보이고는 아침에 보냈으니까요. 죽 은 사람도 죽은 사람이지만 산 사람이 당하는 그짓도 못할 노릇이 라. 그러 니 부모들과 큰애기들은 울고 불고 애간장을 태우다 못해 생각해낸 것이 밤에 양민들끼라 찬물 떠놓고 큰애기·총각 결혼식을 올려버리는 방법이었 어요 그렇게 결혼해 지금까지 사는 사람이 많아요” 동촌부락 학살현장에서 살아난 곽상일씨의 말이다. 그 같은 5중대의 작 전지역에 걸려든 불갑산 일대의 자연부락 주민들은 죽음의 그림자 앞에 몸 을 떨어야 했고, 동촌·진다리마을 학잘을 필두로 해서 함평군은 이제 5중대 의 광란의 도가니로 변해간다. 학살 이후 마을규모가 절반으로 잔다리·동촌학살사건이 았던 날로부터 하루뒤인 12월 7일(음력 10월 28일) 아침 8시경.5중대 병력은 월야면 윌악라 내동, 못갓, 순촌, 송계, 동산, 괴정 등 6개 마을을 기습했다. 이 미을들은 이틀 전 학살이 있었던 동촌부락에서 동쪽으로 약 3km 떨 어진 곳으로 4백여 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 특히 동래 정(鄭)씨와 진주 정(鄭)씨가 집단으로 살고 있는 집성촌이기도 했다. 군인들은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충을 쏘아대면서 골목골목 누비고 다니먹 불을 질렀다. 군인들과 이장은 “도로복구공사하러 가-01= 하니까 나이에 관계 없이 모두 나오라”고 외쳐댔다. “만약 집에 남아 있다가 걸라면 총살하겠 다”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순촌·못갓·내동·동산·송계·과정마을 주민 1천여 명은 군언 152 - 4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