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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다. 그들은 대부분 양민들이었고, 소위 부역자 그라고 소규모의 무장 인민 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11공바토별사.i국방부)에서도 당시 붐감사내에 있었 던 무장병력을 3밍명으로 적고 있을 만큼 전투요원은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편 불갑산에 연해 있는 함평군 해보면·나산면·월야면 일대의 자연부락 들은 이 같은 상황 아래서 숱한 곤경을 맞이하게 된다. 밤에는 불갑산에 은 거중인 세력들이 내려와 식량을 요구했고, 낮이 되면 토별대는 그들대로 또 식 량을 줬다고 닥달했다. 당시 불짧많뺀흔랜}듀빛댄폰파견된- 굳꾼」젠llf}단 원설뀔걷펀대 뚫빨 L맨친관용으멸석 불갑산 세력과 끊임없이 소규모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일대는 주민들의 표현을 빌자면 ‘낮이면 대한민국, 밤이 면 인민공화국’이었다. 불갑산 세력은 토벌대가 빌려오자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들녘에 쌓여 있던 벗단을 가져다 산에서 타작을 했고1 나중에는 인끈 부락, 심지어 ~km 이상 떨어진 곳까지 드나들며 식량을 확보해야 할 만큼 궁지에 몰려 있었다. 불갑산 세력은 그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벌대에 결사적으로 맞섰다. 함평군 해보지서, 월야지서나 장성군 삼지지서 등이 밤에 유격대의 습격을 자주 받게 된 것이다. 월야지서의 경우는 한때 낮에만 근무하고, 밤에는 아 예 5중대 본부가 있던 해보지서로 피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지역내 주민들이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충돌하는 사태가 생기기도 하였다. 함평군 월야면 동촌리에 살고 있는 곽상일(56샌l는 그 내 막을 이렇게 회고한다. ‘'6.25가 막 터지니까 공무원, 경찰들이 후퇴하면서 보도연맹 가입자들 명 닫을 7}걱코와 확 잡아갔아. 석넓 꽤익 트력쉐 보련 가입자들을 가득 섣코 함평군 대동면 작우라 너태골에서 다 죽여버렸어. 냐중에 이것이 호꼽아 된 - ‘ 거여. 그 유족들이 인민공화국 치하가 되자 학살한 경찰과 가족들에게 보복 을 했어. 인민군은 여기 와서 말썽이 없다가 산으로 갔지만 지역 내부 사람 들끼리 살육과 보복이 있었제" 146 - 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