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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6월 하순부터 8월말까지 수원 이남의 전국 각지에서는 경찰, 청년방위대, 대한청년단원들에 의해 조직적인 민간인 집단학살사건이 벌어졌다. 이른바 ‘보도연맹사건’이다. 이 학살로 추산되는 사망자 수는 약 50여만 명. 아직도 기록조차 되고 있지 않는 우리 현대사 최고의 학살은 이렇게 일어났다. 이어서 ‘청년군대’들인 대한청년단, 향토방위대, 청년방위대 등이 도시와 촌락과 삼림 속에 묻혀 숨었다가 미군과 한국군의 반격에 때를 맞춰 이른 바 ‘부역자’를 대상으로 대량학살을 벌여나갔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후환을 막기 위해 일일이 수색해서 반란분자를 적발·처치해야 한다”는 이승만 정 권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국방부 정훈국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란 1년 지CD) 개전과 동시에 시작된 보도연맹원 집단학살사건과 대전, 대구, 광주, 목 포, 부산 등지의 교도소내 정차범에 대한 불법처형 등의 모든 행위가 전국 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증명하는 증거들과 생존 증인들은 아직도 많다. 또한 당시의 외국언론들에서도 이 문제는 ‘야만적 행위’로 대서특필되었던 적도 많았다.1950년 12월 17일 서울발 『뉴욕 타임즈』의 보도에 의하면 “트럭 몇 대분의 노인, 부인, 청년, 그들의 아이들이 자선들이 매장당할 구덩이 앞에 늘어서서 창과 기관총을 소지한 한국헌병들에게 사잘되고 있는 광경을 목 격한 영국군 부대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와는 다른 방식의 대규모 집단학살은 1950년 가을부터 시작된 지리산· 회문산·불갑산 일대의 유격대 토범작천과젓에서 이루어검다 11샤다 9껴패, 20연대 등에 의해 주도되던 이 토별작전은 이른바 ‘견벽청애(堅뿔淸野)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수많은 산간부락의 비무잣 ~q까910 야 했다. 당시 이 작전의 작전명 령서는 다음과 같다. A 잠전지역내의 <?l원은 전원 총살하라 A공비들의 근거지가 되는 건물은 전부 소각하라 A적의 보급품이 될 수 았는 식량과 기타 물자는 안전지역 。 무 후송 하거나 불가능한 경우는 소각하라 20 1 | 4 「 넉 니 A 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