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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보도 자료 1993년-2009년] 함명민간인학살진상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함명지역에서는 양민학살t월야, 해보, 나산면의 양민) 외어표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이들은 군유산과 불갑산의 토벌과정에서 발생되 거나 원인이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1949년 7월 7일부터 1952년 4월경까지 함펑읍 수호리와 진양리(48명), 손불 면 월천리 어전 내락굴, 북성리 군유산 등{180명), 신광면 송사리 팀216명), 학교면 윌산리(7명) 대통면 강운리(1명) 해보면(36명) 보도연맹 관련자 대통 면 강운리(50여명)에서 민간인 500여명이 학살되는 피해를 당하였다. 학살때 참여한 자들은 국군 제20연대 2대대 5중대 군인들과 경찰기동대 소 속 경찰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군유잔과불갑산 의 토벌과정에서 발생 함평읍 수호리의 경우는 군인들이 진격하면서 논밭과 집에서 환호핸 주민 조효명씨 증언 들을 무차별 학잘하였으며 양심이 있는 군인은 ’밖으로 나오면 죽으니 집에서 나오지 말고 숨어 있으라.’고 당부한 군인도 있었으나 50년 10월 22일 17명이 희생되었다고 유촉대표 조효명씨는 증언하고 있다. 함펑읍 진양리 양림마을의 경우는 경찰유격대원(대장 윤상수) 병력이 불갑산 작전을 마치고 귀대 중에 차량 2대중 1대가 마을앞 도로샘l서 고쟁l 발생하 여 쉬고 있을 때였다. 이때 마을 주민 ’정락규’씨가 경찰서에 야경가기 위해 군 복에 죽장을 들고 마을 골목을 나오다 다시 들어71는 것을 보고 공비로 오인 하여 50년 음력 7월 29일과 8월1일에 마을 앞 선암정과 저수지 제빙에서 마 을 이장 3명, 여자노인 1분을 포함하여 31명을 학살하고 가옥 3동이 소실하는 피해를 당했다고 양림 희생자 유족회 대표 장형기씨는 증언하고 있다. 손불면의 경우는 피해의 형태가 다OJ하다. 50년 11월 14일 양재리 삭막재와 월천라 어전 내락굴에서 28명이 경찰유격 대에게 학살당했고, 51년 11월 14일에는 북성리 승선 박씨 제실 앞 논에서 군 경어i 의하여 14명이 학살된다. 이어 $년 6월 15일에는 나산면 구산랴에서 보 선암정과저수지 제방에서 양림주 민학살 힘항l힘멍군항토문화연구회 1229 - 3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