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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기간행물 보도 자료 1993년-2009년] / / 의 산물이 소위 함평양민학살’ 이라 불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2. 누가 함평사건(양민학살을 의미)은 지라산지구 공비토별을 맡은 국군 저111사단 제20연대 제2대대 저15중대의 군인들이 중대장의 지시에 의하여 저지른 학살 사건으로 국방부에서 발간한 관련자료에 의하면 지휘관은 다음과 같다. 011사단장 : 崔德新준장 o 20연대장 : 朴其炳대령 02대대장 : 柳甲烈소령 o 5중대장 : 權俊玉대위 3 왜 철저히 밝 학살이 있은 후 당시 주민들 λ씨에 전해진 이야기로는 1950년 12월 2일 해 보면 금덕리에 주둔해 있던 5중대 군인들이 장성으로 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 해 가던 중 한새들{현 계림리 시목 마을 앞 계림천내 지하보 부근)에서 시목마 을 뒷산에 진을 치고있는 공비들과 하루동안 전투를 하였고 그 결과 5중대 군 인 2명이(경북 영천출신 김추길, 송기봉) 전사하였고 당일 전사자를 후송치 못 하고 다음날 전사자를 후송커 위해 전투지역에 갔을 때 전사군인의 신과 옷을 다 벗겨갔고 시선을 무자비하게 난도한 것을 본 5중대장 權俊玉이 부하들에거l ‘철저히 복수하겠다 고 다짐을 한 것이 학살의 계기가 됐다고 당시 함께 전 투에 참여 한 양연언(현재 제주도 거주)의 증언이 이를 증땅하고 있다. 4. 피해 결과(저14대국회의 “양민학살진상조사 특별위원회”조사) 국회 제35회 임시회 제19차 본회의(60. 5. 23)에서 국회차원의 진상을 조사 해야한마는함 펑출신 낌의택’ 국회의원의 청원에 의하여 특위가 구성되었다. 0 위원장 : 崔 天 국회의원.0 위 원 :9명의 국회의원(반별 3명) 0 조사반 : 3개밴경남반: 崔天, 조일재, 박상길, 경북반 : 운용구, 송병환, 임 차주,전남반) 0 기 간 :60년 5월 31일부터 %년 6월 10일까지 11일간 0 전남반 : 柳妹祐의원(무안) 朴懶音의원(대전) 휩빼의원(나주) - 3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