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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보도 자료 1993년-2009년] 쓸 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 ¥ 러나뒤이어 발생한5.16쿠데타 로 이 결의는불거품이 된 채 오늘 에이르렀다 물론 지난 10년간〈시사저널〉을 비롯한 여러 매체의 끈질긴 양민 집단 학살 사건(산청 · 함양 -거 창 문경 햄 j 추적보도와각 지역 유족회의 청원에 대해 정부 가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만은 아 니다 현재 행정자치부는 %년 국 회에서 제정된 특별법에 의거해 거창 산청 함양 세 곳의 양민 학살에 국한해 위령 사업을 펴고 있기는 하내잃윷상자 기사 참 조) 그러나 유족회가 결성되어 진 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다른 지역 양민 학살사건은, 명백 한 증거가 속속 드러나는데도 아 직껏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 고있는실정이다 〈시사저널〉은 당시의 국회 기록 을 토대로 하여 생존 유족과 목격 자 -관련자의 증언 및 미군의 공 식 기록을 보강해 그동안 은폐되 어온양민학살사건들을종합해정리한다 讓쳤다 진상규명·보상시급 l 문경얄민학살사건 49년 12월24일 오후 1시께 경북 문경군 산북면 석봉랴 석달 부락 주민 86명이 국군 정찰대에 집 단 학살된 사건이다 가해 부대는 당시 문경 -점 촌지역에 주둔하던 국군제3사단 25연대 3대대 7 중대 2소대 및 3소대 76명이었다 학살 현장 책임 | 서 일부 꾼이 자국민을 상대로 별인 끔찍한 양 i 대 국회 (60년 4 懶후) 진상최반안 조 I :뜯 &대장 유진규 소위와 김점동 해}, 2소대 민학실에 대해서도서둘러 상처를치유하는것이 1 사한국가공식 기록을토대로 했다 당시 국회논 l 를지휘한안택효중사였다 당시 민간인 남자 43 정부와국민의 도리일 것이다 더구나전국각지의 양띤 학살 피해 유족들은 90년대 들어 국회 · 정 부 -언론을 상대로 끊임없이 환부를 드러내 보이 며치료를호소하고있다 야저1 억울하게쓰러져간 영혼들을진혼해야하고, 그유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도달래주어야할때가온것같다 여기에 소개송F는 양민 학삼 사례들은 바보 그런 자유 민주 양당과무소속 의원으로 구성된 ‘(아 | 명, 여자 43명(젖먹이 3병, 초등학생 9명 포함)이 군이 서지른) 양민 학살 진상조사반’ 을 전국 각지 l 희생되었다 의 사건 현장에 파견해 조사를 벌였다 겨우 11일 | 사건의 발단은 현지 부대 인솔자의 오판과 상부 이라는짧은현장조사만으로도국회조사반은무 l 명령무시였다.즉순찰만돌고오라는명령을받 려 42개 지역에서 8천여 명에 달하는 끔찍한 양민 | 았으나 군부대가 들러도 환영해 주지 않는 P}을 학살극이 벌어졌음을 확인했다 당사 국회는 이 l 분위기에 분개해 주민들을 꽁비 협조자 로 단정 조사를보대로 ’학살진상규명괴 피해 보상요구 | 하고학살을자행한것이다 사건후7중대장과이 ‘억울한 죽음’ 에 대한 조사 기록이다 이 기록은 i 에 대해서는 새로 들어설 민주당 정부가 꾼 -경 . I 의승 문경경찰서장이 공모해 상부에 공비 소행’ i 지난10년동안〈써널샘한내용과싼 건합동수사본부를섣치해해결하도록한다 는결 i 렐}위보고했지만서울에서내려간경찰까 SIS.~. J낀:J;극!、r,~ '1' , • | 4 n / ] q J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