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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보도 자료 1993년-2009년] 총살한다고 미군 당국이 이 승만 정부에 강력허 항의한 다음날이었어. 그때 나는 조 좌호씨(훗날 성균관대 총장 역 임) 와 노병용씨 (45년 부 산 건국준비위원장) 랑 같이 지내고 있었지. 형식적인 조 사만 끝내고 날마다 수십명 씩 끌어내 형무소 안에서 전 원 학살하는데 드다어 내 차 례가 됐어. 학살당할 장소로 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갑자기 누가 옆구리를 룩 찌 르길래 돌아보니 일제 시대 내가 이북에서 교사를 할 때 가르친 제자악 서북청년단 해낼 수 없었다? 그는 현채 그곳 코발트광산 수직 갱 속에 수천구의 유골이 고스란히 증 거로 보존돼 있다고 말한다. 한편 50년 7월과 8월 두달에 걸쳐 부산형 무소에 수감된 사람들도 대부분 즉결 총살된 것으로 확인된다. 부산형무소에는 각지에서 이감된 기결수들로덤치고 있었다. 당시 부산 형무소에서 간병부 일을 맡았던 권은해씨 (76 . 동래군 기장읍 거주) 는 “6 . 25 나고 얼마 있다가 형기가 간 사람부터 몇십명씩 묶어 총살시켰다. 간병부 반장을 하던 친구의 일지를 훔쳐볼 기회가 있었는데, 사망자 누계 | 계4대 국회 보고서에는 6 .25 무렵 이같 를 보니 석달 동안 4천8백 32명으로 나와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부산형무소 학살 현장에 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 람도 있다. 당시 부산대학교 교수이던 원로 소셜가 김정 한씨 (81 . 부산시 동대신동 거주)로서, 그는 부산형무소 학살 사건의 산 증안이다. “당시 특무대와 경찰에서 는 진보적 지식인들을 없애 버리려고 혈안이 돼 있었지, 내가 형무소에 잡혀들어간 8월 말은 남한 각지에서 군 경이 비무장 민간언을 즉결 I 뀔션l파나톨암톨 있다. 그 말의 진실성 여부 는 멸리서 찾을 것이 아니 다. 김대통령은 이제 지난 40년간 상처 속에 살아온 수 휠 백만 유족에게 손을 내멀어 잎 야한다. 丁喜相기자 SISA JOURNAL 1993].8 45 다 니 1 i q 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