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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보도자료 1949년-2010년] 마구터지는 大볕殺 秘史 ... 全南 歲平서도 良民千離 報告엔 共몽E討tt의 하옮敵한 戰果라고 - 橋紀 4293년 5월 20일(금요일);한국일보 5단 기획기사 - 【함평에서 20일 굉주지사 이상문기자발] 9.28수복후인 82년 음력 10월 29일부터 음 력 12월10일경까지 사이에 거창I 함양/ 산청/ 문경 등지의 학살사건에 비하지 못할 1천 여 명의 양민학살 사건이 전남 함평군(成平那)내의 월야y 해보/ 나산(月也y 海保/ 羅IJJ) 면 등지에서 감행되었다는 사실이 동터오는 제2공화국을 바라보며 10년 동안을 입 다 물고 있던 현지주민들에 의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1천여 명을 학살한 군인들은 제5사 단 20연대(당시 연대장 박기병 소령) 2대대 5중대의 중대장 권(1뱉俊玉 · 당시 대위 현재 는 대령으로 승진/ 서울에 았다는 설이 있음)의 지휘 하에 동 중대 사병들이 참가하여 /월야면I의 325명 및 /해보면/의 400명과 /나산면/의 300명의 양민을 무자비한 수단으로 학살하였다 군인들은 영광군(靈光郞)과 함평군을 가르고 있는 I불갑산(佛甲 111 ) 공비토벌/을 위해 해보면에 주둔하고 있었으며l 양민을 학살한 숫자를 공비토벌의 혁혁한 전과로 상부 에 보고했었다. 기자가 월야변에서 20일 면사무소와 부락민으로부터 확인한 월야면의 학살 경위를 보면 음력 10월 29일 상오 11시 해보면에서 넘어온 5중대원들은 월악리(月톰-뿔), 외치 리(外III,J 里) 등 5개 부락민을 각각 약 500병씩을 모아 @군경가족과 (2:150세 이상의 고령 자 @16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가려내고 담배를 피우라고 한 다음 기관총과 M1소총 으보 무차별 총살하고 여기서 살아나온 부락민들에게 다시 총질하고 그것도 모자라 조 금이라도 움직이는 시체에 또 다시 총을 싹 숨이 끓어짐을 확인한 후 가택수색을 하여 현금 6천8백10만환/ 백미1천7백98석/ 잡곡 1백5석/ 잡곡 1백5석/ 말 4두f 돼지 144두/ 닭 2,542마리를 강제 징발해 갔다는데 이 변에서는 빨갱이는 한 사람도 없이 양민만 5일 간에 걸쳐 부락 단위로 학살됐다는 것이다. 학살에서 목숨을 건진 어린이와 늙은이를 시켜 그들의 집에 불을 놓게까지 했다는 것이다. 현재 유가족들은 동 사건 진상조사를 정부에 요구하여 동 학살의 총지휘자인 /권f을 즉각 구속/ 극형에 처할 것을 진정할 것이라 하며 만일 이를 들어주지 않을 때 는 부락청년들을 총동원하여 j권/은 물론 그의 가족들을 찾아 몰살하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다. 또한 해보/ 나산면 등지의 학살은 역시 /권r의 지휘 하에 이루어졌는데 여기에 서는 부녀자와 고령자를 가릴 것 없이 부락 단위로 가까운 산중턱에 모이라 해놓고 지 정된 장소에 모이자 미라 준비해 둔 기관총으로 사살했던 것이다.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