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page

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91 김천수의 희생사실에 대하여 신청인 김요환의 진술이다. “형님 김천수는 손불에서 보통학교 졸업 후 목포상고를 졸업하였다고 합니다. 그 무렵 밤이면 반란군들이 괴롭히고 낮이면 경찰이 와서 괴롭히니까 숨어 지냈답니다. 어느 날 경 찰이 와서 자수하라고 하니 자수하러 나갔는데 경찰이 뒤에서 총을 쏘았다고 합니다. 시신 은 부모님이 수습하였습니다.” 131) 1951년 2월 금곡마을 앞에서 김천수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사실에 대하여 금곡마을 거주 참고인 배정문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김천수는 자기 집에 비트를 파놓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분 주소에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인민군 점령기 활동을 하였던 김연섭 형제가 한 집안이었 습니다. 김연섭과 함께 활동하였던 복학분주소장 배권철도 그 무렵에 총살되었습니다.” 132) 금곡마을 배경택(다-6570, 10848, 10850)의 아버지 배열교, 숙부 배공리, 사촌형 배창묵 은 1951년 3월 18일 경찰에 연행되어 손불면사무소 등에서 살해되었다. 신청인 배경택의 진술이다. “숙부는 해은에 살았는데 복학마을 반란군 초소에서 전화 받는 일을 하였습니다. 배재만 이 좌익의 우두머리였는데 숙부는 배재만의 심부름꾼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숙부 연행 이틀 후 아버지가 연행되었습니다. 숙부가 연행된 곳을 처음에는 몰랐다가 아버지가 연행된 뒤 에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마을에서 구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133) 배경택의 가족이 군유산작전 후 경찰에 연행되어 손불면사무소에서 사망한 사건과 당 시 금곡마을의 상황에 대하여 참고인 배정문의 진술이다. “배경택의 아버지를 동네에서는 배권일, 숙부를 배권철이라 불렀습니다. 배권일은 금곡, 배권철 부자는 해은에 살았습니다. 경찰이 배권일과 배권철을 손불면사무소로 연행하여 총 살하였습니다. 배권일 자신은 좌익과는 무관하였는데 동생이 인민군 점령기 복학분주소에 서 활동하였고, 배재만과 같은 집안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134) 131) 신청인 김요환 진술조서(2008.3.22.) 132) 참고인 배정문 진술조서(2009.6.10.) 133) 신청인 배경택 진술조서(2008.5.20.) 134) 참고인 배정문 진술조서(2009.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