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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86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죽장리 장동마을 이엽비(다-5097)의 아버지 이상길은 군유산작전 뒤인 1951년 2월 26 일(음력 1월 21일) 경찰에 연행되어 신광면 유천리에서 살해되었다. 신청인 이엽비는 “아 버지는 누군가 불러서 집에서 나가셨다가 돌아가셔서 시신을 수습하여 왔다는 말을 할머 니께 들었다. 제사는 사촌인 이정산이 지내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109) 이상길이 신광면 유천리에서 경찰에게 살해된 사건에 대하여 장동마을 거주 참고인 이육종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상길은 군유산작전 후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 주민을 집결시키고 반란군 협조자를 색 출할 때 손가락질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이상길의 시신은 선산에 모셨습니다. 군유산으로 피난 간 사람과 경찰고지로 피난을 간 사람이 서로 엇비슷하였습니다.” 110) 장동마을에서 1, 2㎞ 남짓 떨어진 죽장리 수철마을 나병희(다-6297)의 어머니 노가임이 군유산작전이 끝난 3일 뒤에 월천리 어전마을에서 살해되어 시신을 수습하였다. 그에 앞 서 1950년 7월 23일 나병희의 아버지 나정주는 나산면 넙태에서 보도연맹원으로 경찰이 총살하였다. 111) 군유산작전이 시작되자 노가임도 가족과 함께 군유산 방향으로 피난을 갔다. 노가임과 아들 나병희를 제외한 가족은 신광 송사리 해안마을에서 돌아왔지만 노가임 모자는 군유 산으로 갔다. 참고인인 시누이 나복동의 진술이다. “군유산작전 때 저는 부모님과 동암리를 거쳐 신광면 송사리 해안마을 노송굴까지만 갔 다 왔으나 올케는 병희를 업고 군유산까지 갔었습니다. 죽장리 당골 ‘수말댁’이 조카 병희를 업고 동네에 와서 돌려주면서 올케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는 것을 말해주어 알았습니다. 오빠는 목포에서 대학교를 다니면서 보도연맹원이었는데 경찰이 잡아다 죽였습니다.” 112) 노가임의 시신은 ‘수말댁’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가족이 월천리 어전마을에 가서 수습 하였다. 다음은 아들 나병희의 진술이다. “어머니 시신은 할아버지가 어른들과 함께 월천리 어전마을에 가셔서 수습하여 수철마 을 앞 야산에 매장하였습니다. 외삼촌은 경찰이셨고, 당숙도 공직에 계셨습니다.” 113) 109) 신청인 이엽비 진술조서(2008.5.20.) 110) 참고인 이육종 진술조서(2009.3.18.) 111) 참고인 나복동 진술조서(2009.6.13.) 112) 참고인 나복동 진술조서(2009.6.13.) 113) 신청인 나병희 진술조서(200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