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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31 봉)에서 빨치산의 습격으로 경찰 20여 명이 사망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영 향으로 며칠 뒤 경찰이 우리 마을을 소개시켰습니다. 그 무렵 원산리 학동마을 고모할머니 집에서 빨치산 대장이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320) 삼덕리 좌야마을 앞의 경찰과 빨치산의 교전에 관하여는 당시 구국연맹 신광면 지부장 이었던 모원도 비슷한 진술을 하였다. “신광면이 수복될 무렵 삼덕리 바로 앞에 ‘서근다리’가 있는데 그 부근에서 빨치산과 경 찰의 교전이 있었습니다. 그 교전에서 빨치산이 10명 정도가 죽었습니다.” 321) 사건 당시 마을에 있으면서 이들 사건을 목격하였던 참고인 이기섭은 당시 마을의 상 황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마을이 취약지대라 경찰이 주민을 집결시키는 일이 잦았습니다. 조기형은 집결에 늦게 나왔다고 죽였습니다. 덕동 전무남, 이대근, 김수복, 천기순 등이 그 무렵에 죽었는데 신광 지서 의경 김정섭이 연행하여 원남마을 앞 냇가에서 죽였습니다. 이만옥․이천옥 형제와 김일도 죽었습니다. 김경수와 아들 김용운도 계천리 경찰고지에서 죽었는데 김경수는 인공 때 직책을 맡았었습니다. 시신수습은 가족들이 하였습니다.” 322) 마) 그 외 지역 백운리 백오마을에 살았던 심덕희(다-4305)의 어머니 강금례가 1950년 11월 29일(음력 10월 20일) 집안에서 디딜방아를 찧고 있다가 집안에 들어온 대창부대에 연행되어 백운 리 신기마을 황점저수지에서 살해되었다. 어머니가 연행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신청인 심덕희의 진술이다. “어머니와 언니, 오빠, 그리고 제가 디딜방아를 찧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창에 조그만 태 극기를 꽂고 온 사람 등 대창부대원 다섯 명이 어머니를 끌고 갔습니다. 그들 중에는 백운 리 숙구 ○○○, ○○○323) 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머니를 연행하여 저수지 너머 모 퉁이를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3일 후 아버지가 돌아오셔서 황점저수지 위에서 어머니 시신을 찾아왔습니다.” 324) 320) 신청인 김용찬 진술조서(2008.4.22.) 321) 참고인 모원 진술녹취(2009.3.6.) 322) 참고인 이기섭 진술조서(2009.4.22.) 323) ○○○, ○○○가 신광면 백운리에 거주하였던 사실은 확인되었다. 신광면-8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