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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평행爛擺총輔혜織鐵짧바로"없래편에 기와를 굽던 웅덩이가 있없는데 그곳에 시체를 ,띠써 l 께께. 어비 ,꺼기‘ A T 보 를 .m 까 아 E E -E 꾀셰” ”혀。 기 - 맥 縮 도 。 지니 ,가끼 川뻐” 내에口 씨봐 l .케디 l lA ’{ 」-’』 티끼 뼈뻐 l 메디 l 지겉 으 E 불 다­ 「니‘ 히야 μ 」츠。 「파 에Wl ·비냐 l 뎌--어.샤 01곳 저곳을 헤매다 맨 윗논어l 두루마기를 입고 쓰러져 있는 사랍을 발건하고 달려가 보니 아버지 (윤석현 삿)었고 뚫 떳겨보니 랩으로 옆 갈비를 뀔려 피가 응고되 가고 있었으며 잠시후 운명 하시기에 두루마기로 얼굴을 덮어놓고 용산리 씹 이계옥 집에 피난가 있던 가족들에게 가보니(당시 집과 소성부락으로 가족들이 웹를 했었음) 어머니와 어린 동생 들이 꿇어| 떨고 있었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알리고 가족과 함께 아버지 시신을 매장하기로 하고 저녁무렵 현장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선산 밑 밭에 어렵게 가매장하고서 다시 청방 비녀봄으로 들어갔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엔 날씨가 매우 추워 땅이 얼어 붙어 시체들을 제대로 처리할 수가 없었으며 타ÃI 에서 온 피난민들이 많아 시체들이 동태같이 얼어 붙어 웰하게 늘어져 있었으며 언고자 에게 언락할 김도 없어 이듭해 초봄까지 도로, 들과 산에 사체들이 즐비한 상황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당시 목걱자들이‘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의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있으나 이 엄청난 양민학살 사건은 밝드시 그 진실이 규명되어야 하며 위의 사실을 언제든지 증언할 수 있는 증인으로 참석할 수 있음을 언서로 증언합니다. - 10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