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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터지는 大塵殺 ¥&史 全南威平서도 良民千餘 報告엔 共塵討~,의 藏藏한 戰果라고 - 樓紀 4293년 5월 20일(금요일) ;한국일보 5단 기획기사 - <함평에서 20일 광주지사 이상문기자발 >9 . 28수복후언 82년 음력10.29일부터 음력 12.10일경까지 사이에 거창,함양,산청,문경등지의 학살사건에 비하지 봇할 1천여명의 양민학살 사건이 전남 함평군(威平群)내의 월야,해보,나산(月也,海保 ,羅山)면등지에서 감행되었다는 사실이 동터오는 제2공화국을 바라보며 10년동 안을 업 다물고 있던 현지주민들에 의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1천여명을 학살한 군언들은 제5사단 20연대(당시 연대장 박기병소령)2대대 5중대의 중대장 권(權짧 玉=당시대위 현재는 대령으로 승진,서울에 었다는 설이 었음)의 지휘하에 동중대 사병들이 참가하여 『 월야 』 면의 325명 빛 『 해보 』 면의 400명과 『 나산 』 면의 300 명의 양민을 무자비한 수단으로 학살하였다 군언들은 영굉f군(靈光都)과 함평군을 가르고 있는 불갑산(佛甲山) 공비토벌을 위해 해보면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양민을 학살한 숫자를 공비토벌의 혁혁한 전과로 상부에} 보고 했었다. 기자가 월야변에서 20일 면사무소와 부락민으로부터 확언한 월야변의 학살 경위 를 보면 음력 [10월 29일 상오 11시 해보면에서 넘어온 5중대원들은 월악리(月톰 里) ,외치리(外時里)등 5개부락민을 각각 약500명씩을 모아 @군경가족과 @50십 세이상의 고령짜 @16세이하의 어린아이들을 가려내고 담배를 피우라고 한 다음 기관총과 M1소총으로 무차별 총살하고 여기서 살아나온 부락민들에게 다시 총질 하고 그것도 모자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시체에 또 다시 총을효과 숨이 끓어점을 -9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