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펙 ’싸;뇨씩 j 젠깡~:~i’j ~~ß;> γ? 뿔째憐센 口 함평양민학살사건 최대의 희생자는 월야면 월악리 지변, 내동, 순촌 송계, 괴정, 성주, 동산마을 등에서 일어났으며, 국군들이 동촌, 장교마을에 입성해 보복살인을 감행하던 날 공비들이 외곽으로 피 했다가 밤이되자 마을뒷산에 봉화를 올렸는데 그날 저녁 월악리에 있는 월악산에 봉화를 피운 사건이 발생 하였습니다. 。 그 뒷날 5중대는 7개마을 사람을 모두 모이도록 하여 대략 7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중에서 15---40세까지의 사람들(남, 녀) 을 모아서 마을로 부터 300여미터 떨어진 남살봐 (남산)로 꿀고가 기관총을 난사하여 모두 학살 하였는데, 이때의 희생자가 130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 이러한 학살이 빨치산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양민을 대상으로 이 루어졌다는 증언이 많으며, 당시 송장더미에 깔려 있다가 기적적 으로 살아났던 정연옥씨 (66세)는 군 • 경가족이 있으면 나오라고 하여 방위군소대장이던 정병오씨(당시 25세)가 일어나서 『나는 방위군소대장이며 현재 낙오자 이다』 라고 말하고 방위군 증명을 제시하였으나 중대장 권준옥은 『이새끼』 라는 말 한마디만을 한 채 정병오씨의 가슴에 권총을 쏘았는데 총을 맞은 후에도 죽지 않은 청병오씨는 비틀거리며 두어발자국 앞으로 걸으면서 『대한 민국 만세 』 를 세 번 불렀고 그 순간 다시 권총 두발을 더 쏘아 죽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 10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