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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사건의 발생 배경과 원인 진실화해위원회는 과거 국가기관에 의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그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권고를 내리는 것을 주요한 엄무 로 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 호남지역이 게릴라전의 양상을 지년 전쟁상태였 다는 점을 고려하되, 토벌과정에서 호남 거의 전 지역에서 이러한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사건이 발생한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여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교훈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11사단 소속의 군 인이 빨치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왜 비무장의 민간인들이 이렇게 많이 희 생되었으며, 민간인 희생규모가 그렇게 컸던 이유는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 가 있다. 1. 한국전쟁 발발이전의 군 토별작전과 민간인 희생 11사단 20연대에 의한 호남지역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돌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부 수립 전후 발생한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전후의 군의 토벌 작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군과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사 건은 남한정부를 위협하는 반정부 무장저항이었기 때문에 이승만 정부는 정 권의 존립을 위해서 철저한 진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즉 이러한 저항을 사실상의 내전 상황으로 파악한 정부는 군경을 동원해 강경한 진압작전을 펼치게 되었다. 그 결과 제주도에서는 다수의 민간인 학살이 빈발했다. 제주에서는 1948 년 11월 중순께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4개월간 진압군은 중산간 마을에 불 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했다. 1948년 11월 중순 이전에는 젊은 남 성들이 주로 희생된데 반해 강경진압작전 때에는 토별군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주민들을 총살함으로써 제주4.3사건 희생자 대부분이 이때 희생됐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서 작성한 희생자 통계를 보 면, 15세 이하 전체 어린이 희생자 중 1948년 11월부터 1949년 2월까지의 희 생자가 76.5%를 차지한다. 또한 61세 이상 희생자 중에서는 이 기간에 76.6% - 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