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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팍골’에서 ‘총살’로 분류된 주민들을 총살하였다.128) 나.담양 담양지역은 북쪽으로 순창군과 접해 있는데, 담양의 북쪽 끝인 용면 추월 산 가마골이 순창군의 회문산과 연결되는 요충지로 이곳에는 빨치산 노령지 구가 들어서 다수의 빨치산이 활동하였다. 용면 두장리에 거주했던 노동식은 “당시 군인들에게 쫓긴 인민군들이 순창이나 정읍으로 못 가고 모두 가마골 에 집결하였고, 또 가마골로 피신했던 민간인들도 인민군들 때문에 산을 내 려오지 못하여 빨치산들이 많았다”고 진술하였다.129) 담양지역에 대한 국군 제 11사단의 빨치산 토별작전은 1950년 10월 15일부 터 20연대 1대대에 의해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사료에는 “연대작명 제6호(단 기 4283년 10월 13일부)에 의거 제 1대대장 육군소령 최형록 예하 1개 대대는 남원~광주 간 도로를 차단하여 보급로를 위협하는 담양지구의 적을 섬멸하 였다”고 기록되어 있다.130) 또한 이 지역 ‘작전상황도’에는 ‘담양읍 및 부근일대 소탕전’이 1950년 10 월 15일에 수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담양에 진주한 1대대는 대대본부와 3, 4중대를 담양읍에 주둔시키고 1, 2중대는 전라북도 순창지역으로 이동시 켰다. 무정면 덕곡리는 전북 순창군, 곡성군 옥과면과 접하는 곳으로서, 담양군 용면 가마골과 화순군 북면 백아산의 연결로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50여 명 의 빨치산이 이 지역에 은거하며 주변 지역 군경을 습격하였다고 한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인 10월 23일경, 빨치산들은 경찰가족 7, 8명을 끌고 와 마을 에서 사살하고 주민들에게 시신 매장을 명령했는데, 그 중 1명이 살아서 도 망친 일이 있었다.131) 128) 진실화해위원회, 「불갑산지역 민간인 희생사건J , IT'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3.JJ, 2009, 58-62쪽. 129) 노동식은 “당시 빨치산들은 자기네를 1개 여단 규모라고 하면서 노령지구 전투사령부 로 불렀다”고 진술했다. (진실화해위원회, r전남지역(담양 · 장성 · 화순 • 영광) 11사단 사건J, 2009, 44쪽). 130) 육군본부, 『한국전쟁사료.JJ(59권), 1987, 926쪽. 936쪽 131) 20연대 3대대장이었던 김필상과 중포중대장 권혁로는 1950년 10월경, 곡성군 옥과변을 - 8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