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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2년 9월 20일로 기재되어 있었다. 따라서 김대자가 경찰에게 끌려가 살해 된 것이 여순사건 이후라는 김미섭의 진술과 제적등본의 사망 일자는 부합하 는 것으로 보인다. 보여리 보전마을 채정자(다-3624)의 조부 채수영은 1949년 함정리에서 군인들 에게 살해되었다. 군인들이 좌익 활동을 이유로 채수영의 조카 채돌병을 연행 하려 왔으나 채돌병이 없자 채수영을 총살하였다. 다음은 채정자의 진술이다. “할아버지 채수영은 전쟁 전 빨치산 토벌작전을 나왔던 군인들에게 살해 되었습니다. 막내 종조할아버지의 아들 채돌병이 좌익 활동을 하였다고 군 인들이 주민들을 마을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채돌병은 이미 산으로 피해버 려 군인들이 큰아버지인 할아버지를 불러내어 함정리 구봉잔둥으로 데려 가 총살하였습니다. 1951년 정월 초사흘 새벽에는 아버지가 빨치산에 연행 되어 살해되기도 하였습니다;"395) 채수영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당시 신광면사무소 공무원이었던 참고인 모원 은 “채두표는 보여리에 살았는데 소개를 나왔다가 빨치산에게 죽었다. 채두표 의 아버지가 채수영인데 채두표는 나와 친구였다. 채두표의 아버지 채수영도 조카 때문에 전쟁 이전 군인들에게 살해되었다”고 진술하였다.396) 채수영의 제적등본을 확인한 결과 채수영의 사망일자는 ‘1949년 5월 21일 마을 앞에서 사망’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백운리 강춘오(다-4426)의 아버지 강성문도 ‘운행굴’에서 경찰에게 살해되었 다. 강성문은 백운리 종곡에 살면서 삼천동에서 보리 방앗간을 운영하였다. 1949년 8월 16일 밤 마을 앞 조밭에 빨치산이 숨어들자 경찰과 총격전이 있었 고 다음날 강성문은 경찰에 연행되었다. 다음은 신청인 강춘오의 진술이다. “아버지 강성문은 1949년 8월 16일(음력 7월 22일) 아침 신광지서 경찰 2 명에게 지서로 연행되어 그날 오후 운행굴에서 사망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밭일을 하다 연행되었는데 안면 있는 경찰이 집안 어른께 아버지가 돌아가 셨다는 것을 알려주어 시신은 수습하였습니다. 사건 전날이 신광장날이었 395) 신청 인 채정자 진술조서(2008.4.4.) 396) 참고인 모원 진술녹취(2009.3.6.) 짜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