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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상막재에서 사망하신 분은 모종두의 숙부 모양선, 모종채의 부 모일 기, 모성만의 어머니와 누나 모복님, 조남승의 사촌형 조상술 둥입니다. 시 신은 경찰이 물러난 뒤 가족들이 수습하여 안장하였습니다."254) 1950년 12월 12일 작전 이전 함평읍으로 시계를 고치러 나가다가 경찰에 연 행되어 살해된 경우도 있었다. 양재리 모량 모근배(다-4286)의 형 모용배는 시 계를 고치러 함평읍으로 나가다 산남리 감남마을 앞에서 경찰에 연행되었다. “당시 나다니기가 쉽지 않았는데 형님은 시계를 고치러 가다가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연행소식은 우리 마을이 처가인 나근행이 함평경찰서 의 용소방대원이었는데 그 분에게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함평경찰서에 면회를 가셨다가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함평중학교 앞에서 시신은 수습하 였습니다. 형님 또래 3분이 좌익 활동을 하였는데 한 분은 입산하여 행방 불명되었고, 한 분은 자수, 한 분은 복역한 후 사망하였습니다."255) 모근배의 형 모용배의 사망사건에 대하여 참고인 모학기는 “모용배는 경찰 진주 이전에 함평읍에 시계를 고치러 나가다 경찰에게 연행되었다. 시신은 함 평읍 장년리에서 수습하였다”고 진술하였다.256) 나)북생리 군유산 아래인 북성리 차경마을은 신광면 송사2리 삼천동, 해안마을과 인접 하고 있다. 경찰은 1950년 12월 12일 신광면 계천리 경찰고지에서 이 마을을 거쳐 북성리에 들어왔다. 이날 경찰이 사기, 승선마을까지 진주하였다는 진술 은 없었는데 경찰은 차경마을까지 진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차경마을 박광수(미신청)의 아버지 박영규는 1950년 12월 12일 경찰에게 살 해되었다. 당시 8살이었던 박광수의 진술이다. “아버지가 그날은 오전 일찍부터 피난을 가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후 에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저에게 ‘아버지 옷을 챙겨서 따라 오라’고 하 254) 참고인 모학기 진술조서(2009.5.27.) 255) 신청인 모근배 진술조서(2008.6.11.) 얄6) 참고인 모학기 진술조서(2α)9.5.27.) - 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