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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보다 나이도 한 살 어리고, 덩치도 작아 형님은 어른으로 취곱되어 경찰에 케 총살되었고 사촌형님은 마을로 돌아왔습니다."21지 복흥리 복치마을에 소개를 나갔다가 좌익들에게 군유산으로 잡혀갔던 정상일 은 같은 마을 노동안으로부터 정동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정상일의 진술이다. “수정동 노동안이 손불지서로 잡혀갔다 풀려나왔는데, 노동안이 ‘정동일 이 사기마을 뒤 모래밭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경찰이 분류하 였는데 사촌형 정동일은 죽일 사람 대열에 있었다고 합니다. 사촌형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노동안은 손불지서를 거쳐 돌아왔습니다. 시신은 음력 정 월 17일에 수습하였습니다. 노동안은 20여 년 전에 사망하였습니다."213) 라) 그 외 지역 보여리는 군유산 우측에 위치하며 군유산과 불갑산의 연결 통로 상에 있는 마을이다. 보여리는 1950년 12월 12일 경찰 진주 후 마을이 소개되었으나 피 난을 나갔다가 돌아온 주민들이 마을에서 피해를 당하였다. 신청인 곽일례(다-2302)는 결혼하여 시숙모 주단염214)과 시사촌인 박균신 형 제가 1950년 12월 12일 경찰의 소개명령에 피난을 갔다가 경찰의 총격에 사 망하였다는 말을 시어머니로부터 들었다. 다음은 곽일례의 진술이다.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는 경찰이 소개시킬 때 계천리 사천마을에 피난을 나갔지만 시숙모님은 소개명령이 내려졌을 때도 시동생 둘을 데리고 마을 에 계셨는데 음력 1월 14일 군유산작전 때는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고 합 니다. 작전이 끝난 뒤 주민들이 군유산으로 시신을 찾으러 가서 시숙모와 시동생의 시신을 찾아 수습하였다고 합니다. "215) 주단임과 박균신 형제의 사망에 대하여 참고인 채희원은 “박용봉의 부인 택 호가 송임댁인데 그 분은 군유산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고 진 212) 신청인 정휴상 진술조서(2008.8.21.) 213) 참고인 정상일 진술조서(2009.3.5.) 214)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주단임의 이름 외에는 나이 등 기타 신원은 확인할 수 없었다 . .215) 신청 인 곽일례 진술조서(2008.5.9.) - 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