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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불면50) 가)북성리 사기마을 이재표(다-4418)의 장형 이재화는 마을에 있던 좌익의 권유에 동 생 이재표 등과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이재표는 오후 1시경 경찰이 군유산 봉우리를 점령하자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중턱에서 마을로 내려왔다. 동생 과 헤어져 마을로 내려오던 이재화는 사기마을 뒤에 았던 경찰의 총격을 받 아 사망하였다. 이재화의 시신은 2. 3일 뒤 가족이 수습하였다.51) 이재화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참고인 박병규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재화는 사망할 때가 21살로 저보다 5살 많았습니다. 그분은 인민군 점 령기에 특별한 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재표의 형제가 6형제였는데 형 제가 모두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이재화만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시신은 가족들이 찾아 수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2) 사기마을 조복례(다-8488)의 남편 황장술과 장여님153)(다-8489)의 삼촌 장길 선은 군유산작전이 끝난 4일 뒤 경찰에 연행되어 살해되었다. 황장술과 장길 선은 1951년 2월 19일 새벽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정상에서 경찰에게 잡 혔다. 황장술과 장길선은 군유산에서 손불지서로 연행 후 석방되었으나 월천 리 어전에서 다시 경찰의 총격을 받고 집에서 치료를 하고 있었다. 다음은 신 청언 조복례의 진술이다. “남편은 2월 19일(음력 1월 14일) 어전마을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아 집 에서 호박 속을 바르면서 치료 중이었는데 3일 후인 2월 22일 오후 경찰이 마당으로 나오라고 하여 죽였습니다. 경찰의 명령에 제가 남편과 함께 나 갔는데 남편은 나가자마자 경찰이 쏟 총에 맞았습니다. 그날 다른 마을 분 50) 손불면은 함평군의 북서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함평읍, 신광면, 영광군 군남 · 염산면과 접하고 있다. 손불면은 인접한 해제반도를 통하여 무안, 신안군과 연결되어 있어 좌익세력의 저항이 지속 되었다. 때문에 신광면이 1950년 11월 초부터 계천리에 경찰고지를 설치하고 주변 지역 치안확보 에 나선 것과 달리 손불변은 군유산작전이 끝난 뒤에야 치안기능을 회복하였다. 51) 신청인 이재표 진술조서(2008.5.8.) 52) 참고인 박병규 진술조서(2009.5.26.) 53) 장여비는 조복례가 남편 황장술이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후 재가하여 낳은 딸이다. 신청인 장여비 진술조서(2008.5.21.) - 6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