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η 나산면 덕림리 이얼용 부부 희생사건(마-656κ 1950.10.12/1950.11월경) 1950.10.12.(음력 9.2)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나산면 덕림리로 피난 와 있던 진실규명대 상자 이일용(李一龍, 34)과 그의 부인 김판순(金判順, 32)이 행방불명되었다. 신청인과 참고인들에 의하면 이일용은 경찰이었다고 하며,172) 끌려간 이후 행방을 알 수 없어 시신수습은 하지 못했으며 끌려간 날을 기준으로 제사는 음력 9.2.에 지낸다. 이일용의 부인 김판순은 이일용이 끌려갔다는 소문을 듣고 찾으러 간다고 나갔다가 음력 10월 초 월야면에서 나산면으로 오는 길에 좌익들에게 붙잡혔다는 소문이 났다고 한다 1었) 참고인 000은 광주에 있던 이일용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사건 당시 아버 지로부터 이일용이 향교저수지 쪽으로 묶인 채 좌익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는 이야기를 듣고 신청언 가족한테 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러자 이일용의 부인 김 판순이 찾으러 간다고 나갔다가 행방불명되었으며 그 후 나산면 외치리 참새암골에서 희생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174 ) 이로 볼 때 이일용과 김판순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했지만 이일용이 끌려간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고r 김판순이 희생당했다는 소문을 듣는 등 좌익들에게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8) 학교면 사거리 박현채 희생사건(마-4569, 1950.10.14.) 1950.10.14.(음력9.4) 학교면 사거리 율동마을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박현채(朴顯 宋, 4η175)가 집을 습격한 좌익들에게 끌려갔는데l 끌려간 지 14일 만에 대동면 상옥리 옥동마을에서 시신을 수습해 왔다.176) 172) 전남지방경찰청에 이일용에 관해 조회를 의뢰했으나 관련기록이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진실화해 위 원회 2009.8.5/회 신 2009.8.13) 173) r신청언 이월자 진술조서 (2008.2.19)J 174)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3.16)J ; 참고인 000는 이일용이 대동저수지에서 희생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나, 000의 진술이 좀 더 구체적이어서 000의 진술에 따라 향교저수지로 끌려가 희생당했다고 추정된다. 또한 참고인 000은, 당시 “이일용이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그 가 족한테 하지만 않았어도 이월자(신청인)의 어머니만이라도 무사했을지 모른는데”라고 하며 마음의 빚을 항상 지고 있는 느낌이라고 진술했다. 175) 신청인 박용은 신청내용과 똑같다고 하면서 진술을 거부했다. 박현채의 희생시기는 참고인 000이 한국전쟁 당시 율동마을에서 좌익에게 희생당한 윤상연, 박현채, 윤상규, 정정환의 희생사실을 구체 적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그 진술로 희생시기를 확정했다. 참고인 000도 정확한 시기는 기억하지 못하나, 군경에 의한 마을사람들의 희생사건이 음력 9.11 에 있었는데 윤상연 등 4명은 그 전이라고 진술하는 것으로 봐서 000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176)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2.23)J - 5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