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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고 절구대로 때리며 이장언 김종열에게 돈을 안 가져오면 마을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했다. 그래서 김종열이 돈을 가지러 간다고 하자y 김종열이 도망가지 못하게 2명이 감 시하러 따라 갔다. 감시하러 따라간 2명과 김종열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 에서 총이 부러졌는지 그 중 1명이 부러진 총을 가지고 다시 마을사람들이 모여 있던 집으로 와서 마을 사람들을 때렸다. 그리고 그 집에 있던 좌익들이 김종열이 있는 곳 으로 몰려갔고 그들이 쏟 총에 맞아 김종열은 사망했다. 혼란한 틈을 타 모여 있던 마을사람들이 피했기 때문에 당시 마을에서 희생당한 사람은 김종열 외에는 없었다}5) 김종열의 시신은 그 날 밤에 가족들과 마을사람들이 수습했다.36) 2) 신광면 송사리 검장옥 일가 4명 희 생사건(마-261α 2611, 10800, 1948.8.3.) 1948.8.3.(음력6.28) 신광면 송사리 사간마을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김상옥(金相 玉~ 45)과 그의 아버지 김한중(金漢中~ 76)~ 어머니 양방전(梁方田, 77)~ 그의 일가 김봉 옥(金奉玉, 30) 등 4명이 빨치산들에게 희생당했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이장 김상옥의 논을 매던 날이어서 마을사람들 20여명이 김상옥 의 논을 매고 난 뒤 점심을 먹고 쉴 때였다. 그때 빨치산 7-8명이 김상옥의 집에 나타 났다. 그들 중 1명은 카빈총을 들고y 나머지는 몽둥이를 들고 경찰 행세를 하며 먼저 김봉옥(일명 김차현)에게 수갑을 채워 끌고 나갔다. 그리고 김상옥에게 “반란군들한테 밥을 해 주었냐”고 물었는데 안 해주었다고 하자 거짓말을 한다며 김상옥의 뺨을 때렸다.37) 그러던 중 김상옥은 그들이 경찰이 아닌 것을 눈치 채고 뒷산으로 도망을 가다가 붙잡혀 와서 몽둥이에 맞아 희생당했다. 그것을 본 김상옥의 아버지 김한중과 어머니 양방전이 그들에게 달려들다가 이들 역시 몽둥이에 맞아서 희생당했다}8) 그리고 끌려가던 김봉옥은 수갑을 찬 채 도망가 다가 붙잡혀서 역시 몽둥이에 맞아서 희생당했다.39) 35)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3.18)J 36)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3.18) 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2009.3.18) J 37) 참고인 000은 당시 김상옥의 집에 왔던 빨치산들이 김상옥에게 “반란군에게 밥을 해 주었냐”고 물었다고 진술했다. 참고인 000도 당시 마을을 습격한 사람들을 두고 “반란군”이라고 칭했다. 정 황상 1949년도에 발생한 사건일 가능성이 크나 당시 사건현장에 있었고 시신수습을 한 참고인 00 。이 재차 “ 1948년”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강조하였다. 신광면 송사리는 군유산 입구에 자리하고 있 는데 당시 이미 군유산 일대에서 활동한 (구)빨치산들이 있었고 그들이 이장 김상옥의 집을 습격한 것으로 판단된다. 38) r피해연구보고서」 에 양방전은 “김가현의 할머니. 1948.6.28. 송사리”, 김상옥은 “김재영씨 할아 버지. 1948.6.28. 송사리”에서 희생당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39)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9)J;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8.3.13)J - 5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