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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과 김석조는 학성리에서 피난 온 주민들과 함께 오두치에서 생활하다 2 월 20일 피난민들이 방공호로 밀릴 때 국군의 총격을 받고 사살되었다. 국군 이 피난민들을 방공호 앞에 세우고 총격을 가할 무렵 문만섭이 김평전을 목 격하였다.142) 김평전의 시신은 이후 김평전의 처와 어머니가 수습하였지만 김석조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하였다.143) 회성마을 박백남(당시 43세)은 아들 박영순(당시 15세),144) 박언순(당시 11 세) 등과 함께 빨치산을 따라 오두치로 피난을 나갔다.145) 사건현장에서 당 시 11살아던 박인순은 국군이 주민들을 방공호 앞에서 총살시킬 때 사망하 였고 나머지 가족은 학성리에 돌아왔다)46) 박언순과 한 마을에 살았던 박기 홍의 진술이다. “박영순/ 박인순은 저와 재종간이고 박영순이 형님입니다. 불갑산으로 피난을 갈 때 박인순은 초등학교 4학년으로 아버지/ 형님과 함께 오두치로 갔습니다. 오두치에서 저와 함께 막사생활을 하였습니다. 당숙과 재종형님은 돌아왔는데 박인순은 국군이 주민들을 방공호 앞에서 총살할 때 같이 총살되었습니다."147) 오두재 인근의 피난상황에 대하여 현장 생존자 문만섭은 11학성리 2구는 원촌과 회성 등 2개 마을이 있는데 원촌 50여 가구/ 회성 10여 가구로 주민 대부분이 피난을 나왔다”고 진술하였다.148) 학성리 주민 외에도 함평군 각지 에서 빨치산에 끌려온 청 · 장년들도 오두재 부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149) 라) 그 외 지역 주민 희생사건 장성군 삼서면 금산리 죽산과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 노동마을은 장성군과 함평군의 군간 경계지역이다. 죽산마을과 노동마을의 서북쪽에 있었던 삼서 142) 오두치에서 군인들의 살해현장에서 살아남은 문만섭은 사건 당일 피난민들이 방공호로 밀릴 때 김평전을 보았다고 진술하였다. 신청인 문만섭 진술조서 (2008.8.19.) 143) 신청인 김귀선 진술조서 (2008.6.10.) 144) 신청인 박영순이 2007년 2월 7일 사망하여 처 나정자로부터 진술을 청취하였다. 145) 신청인 나정자(박영순) 진술조서 (2008.7.10.) 146) 참고인 박기홍 통화보고(2008.11.1.) 147) 참고인 박기홍 통화보고(2008.11.1.) 148) 신청인 문만섭 진술조서 (2008.8.19.) 149) 참고인 정 호범 진술녹취 (2008.9.24.) - 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