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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 혁명군 지도자 장경삼 옥삼 공삼 선생 공적비문 세 분께서는 함평군 신광면 계천리 사천마을에서 아버지 대만님과 어머니 금성김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흥성이다. 세 분의 조상으로 역사에 이름있는 분은 2세조인 연우공이 계신데 고려현종때 거란의 침입을 당하여 임금을 모시고 나주로 피난한 공이 있으며 호부상서를 역임하셨다. 그리고 10대조인 이길공은 7개 고을의 수령과 사간원 대사간 및 충청도 관찰사를 역임하셨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천일 조헌 의병장을 도와 사직을 받든 공으로 이조참판을 역임하셨으며 이 지방에 은거하셨다. 경삼 옥삼 선생은 과거에 뜻을 두고 서울에 올라가 활동하시다가 민씨 척족정권의 세도가 극에 달해 매관매직이 성행하였고 탐관오리가 날뛰었으며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정치적 경제적 침략이 노골화하여 세상이 혼탁해짐을 보고 벼슬길을 단념하셨다. 경삼 옥삼 공삼 삼형제분은 고향에서 학문을 닦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관심이 깊었으며 후진양성과 지역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안팎으로 나라가 위태롭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자 1894년에 호남인들이 앞장서서 반외세의 자주독립과 반봉건의 민주화를 이룩하고자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켜 전라도 전역을 휩쓸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갔다. 이때 옥삼 선생은 큰 뜻을 품고 있던 차 처조카로 함평의 대접주인 이화진의 권유를 받아 형인 경삼 선생 그리고 동생 공삼 선생과 함께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여는 혁명의 대열에 참여하였다. 덕망과 신임이 두터우신 세 분이 동학 농민군의 지도자가 되시니 주위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참여하여 괴치 마을 앞들에 모여 군사훈련을 하였으므로 지금도 이곳을 삼정들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삼형제 장씨가 동학 농민군을 훈련시킨 곳이라는 뜻이다. 세분이 거느린 동학 농민군은 일제 침략군이 주축이 된 관군의 토벌작전에 대항하여 염산 고막원 무안 싸움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경삼 선생은 체포되여 12월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