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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10 함평군의 산업 경제_ ㆍ 899 일과 일에 열리는 손불장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생겨났는데 거의 장의 기능을 상실한1 6 상태로 유지되다가 년 월 일 폐지되었다 장은 매우 쇠퇴하여 장사가 안되고 있었2000 9 16 . 지만 시골사람들은 그래도 가게를 이용하지 않고 장을 이용하는 습관이 있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결국 사라지고 만 것이다 손불면은 군의 북서부에 해안을 따라 있는 면들과. 지방도로만 연결되어 있을 뿐이어서 교통이 불편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인들의 순회지역에. 서 소외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광장(3) 사천장 또는 사납장이라고 불리던 신광장은 년 월 일 폐지되었다 신광장은 영1999 3 22 . 광과 함평간의 도로 중간 지점에 있으며 함평 장성간 국도가 면의 북부를 동서로 지나며~ , 영광 광주간 국도가 남부를 동서로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한데 이렇게 교통이 편리해~ , 짐에 따라 오히려 장이 폐지되는 데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중세적 교통과 근대적 교통이. 차이가 신광장과 같은 면장의 운명을 크게 갈라 놓았던 것이다 근대적 교통의 발달은 읍. 장의 상업적 외연을 군 전체에까지 넓히게 함으로써 면의 장들이 가진 그나마의 경쟁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해보장(4) 동국문헌비고 임원경제지 단계에서 선치장 맬래미장 무너미장 원래는 문암에, ( , . 『 』 『 』 있었다 으로 불리며 장세를 유지하였고 흔히 문장이라 불리는 해보장은 현재는 광주와.) , 교통이 편리하게 통하기 때문에 장의 기능을 상실했다 장성 함평간 국도와 영광 광주간. ~ ~ 국도가 교차하고 있어 편리하다 몇 년 전만 해도 해보장은 용두리 문장리를 중심으로 돗. , 자리 생산이 많아 돗자리 장으로 유명하여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모여 들었다 장날이면. 돗자리를 머리에 이거나 지게에 짊어진 사람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날 하루에 나오는 돗자, 리는 줄잡아 천장쯤이었다고 한다 이 돗자리 거래는 날이 새기가 바쁘게 시작되어 새벽4 . 여섯시쯤에 가장 붐비고 일곱시가 채 못되어 끝났다고 한다 이 돗자리장에는 광주 목포. , , 전주의 장사꾼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서울과 부산의 장사꾼까지 몰려 왔다 이렇게 문장. 의 돗자리장으로 유명했던 해보장은 현재는 빈 장옥들만이 잡초를 키우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형편에 있다. 월야장(5) 월야장은 해보장과 매우 가까이에 있는데 장은 일제 때 이후에 생겨났다 현재 광주 시, . 내버스가 다닐 정도로 광주와 매우 밀접한 생활권을 이루고 있는데 그 때문에 장은 다른, 장들과 마찬가지로 쇠퇴하였으나 이웃한 해보장과는 달리 최근 들어 미약하나마 활기를 띠고 있는 상태이다. 나산장(6) 나산장은 예전부터 계속해서 장을 유지하여 왔으며 현재도 그럭저럭 장세는 유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