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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가 진실규명신청서 상의 희생자 명단). . 나). 마을 앞 저수지 둑 방죽둑비석거리 에 세워져 있는 희생자 위령비의 사망자 명단( ) . 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실태보고서).『 』 244)및『한국전쟁기간민간인희생자피해 연구보고서』 245) 의 관련 부분. 라 주요 참고인과 신청인 대표자의 증언). . 마). 제적등본에 기재되어 있는 사망 사실 사망 날짜와 장소는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음( ). 위 자료를 분석하면 가 진실규명 신청서 상의 희생자 수는 명이다). 28 . 나 방죽 둑 비석거리의 위령비에 새겨진 희생자 수는 명이다). 30 . 이 중 장화식 장영식은 본 위원회의 조사 결과 한국전쟁발발 이후 국민보도연맹 관련 희, , 생자로 밝혀졌다 장화식은 농업에 종사하던 중 함평경찰서 사찰계 최병남으로부터 좌익세력에. , 가담하여 활동하던 동생 장한식을 자수시키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자수시키지 못하자 자신이 대 신 자수하고 보도연맹원으로 가입했다 그는 이것이 원인이 되어 년 월 일 함평경찰서. 1950 7 11 에 연행된 이후 현재까지 소식이 없다고 한다. 246) 장영식의 경우에는 문맹인으로서 농사일과 머슴살이를 하던 주민이었는데 당시 좌익세력들, 이 야간에 찾아와 총부리를 대고 강제로 삐라를 뿌리게 했고 이를 따랐다는 이유로 나중에 자 수하여 보도연맹원이 되었다 그도 역시 년 월 일 함평경찰서에 연행된 후 현재까지. 1950 7 11 소식이 없으며 시신도 찾지 못하고 있다. 247) 결국 보도연맹원인 장화식 장영식의 희생은 본 사건과는 관련성이 없으므로 본 사건 희, , 생자 확인과정에서 제외했다. 또한 위령비에 이름이 새겨져 있는 장금섭은 신청서 명단에는 빠져 있다 그 이유는 장금, . , 섭은 희생자 장명섭 사건번호 다 신청인 장일순 의 동생인데 사건 당일 행방불명되어 마( -1270, ) 을 주민들이 본 사건 희생자로 간주하고 있지만 그 시신은 찾지 못해 신청서를 제출하지 못했, 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신청서 상 희생자 수에 포함되어 있는 장주식 가의 고용인 김동근은 위 의 위령비 명단에 이름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사건 당시 양림마을에서 머슴으로 일하고 있. 었 지만 거주지는 대동면이었기 때문이다 김동근은 신청인들이 신청서를 제출할 때 성명 주소 미상. , 인 상태여서 별도의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고 희생자 수만 포함시켜 제출한 바 있다 그리고 본 위. 원회의 조사과정에서 이 사건과 관련하여 사망된 것으로 판단되어 희생자로 확정되었다.248) 244)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엮음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실태보고서 한울아카데미, , , 2005,『 』 쪽86 . 245) 함평군 앞의 글 쪽, , 38~41 . 246)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신청서 사건번호 다 신청인 장형수( -3926, 2006. 6. 13., ). 247)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신청서 사건번호 다 신청인 장순철 내용( -3927, 2006. 6. 13., ) 248) 참고인 장서인 진술조서 쪽 신청인 장형기 진술조서 쪽 신청인 장기환 진술조서 쪽, 5 ; , 5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