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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사건의 사실적 측면(2) 가 조사내용. 본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 할 수 있는 근거로는 함평폭도 명 사살 이라고 보도, 28① 『 』 된 년 월 일자 호남일보 기사 및 신청인참고인의 진술을 들 수 있다 먼저 위에 언급1945 9 25 . ․ 한 호남일보 기사의 전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 호남일보 기사내용 발행< 1> (1949. 9. 25. ) 위사진은※ 양림양민학살희생자유족회 회장 장형기 신청인의 대표자 가 진술과정( ) (2007. 7. 24.)에 제출한 자 함평양림사건을 보도한 당시 호남일보 기사원문이다1949. 9. 25. . 면서기 구장 등 가담한 함평폭도 명 사살28 함평발 지난 일아침함평서윤상수 중대장이인솔한유격대와한청배속장교( ) 20 ( )尹相洙 김창성 소위가 인솔( )金昌成 한 한청부대가 대동면과 신광면 산악에 적을 색출 또는 잠복근무를 마치고 일 오후 시 반경에 신광면으로부터 귀환21 5 도중 읍으로부터 킬로미터 지점인 함평군 양림부락 뒷산에서 도주하는 폭도를 발견하고 즉시 하차하여 부락을 포위하4 고 사살 명 아지트 개 미신기 대 침구 등을 압수한 전과를 올림28 , 7 , 1 , . 경찰 측은 최판기 순경이 적개심에 불타는 피 끓는 용기로 적진에 돌진하여 수명을 발사 직사케 하다가 불( )崔判基 행하게도 흉탄에 우측 흉부에 부상을 입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