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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제 편8 ┃ 대한민국시대의 함평 나 요약. 국군 제 사단 연대는 년 월 일 이후부터 사단 작전명령에 의하여 각 대대별로11 20 1950 10 14 시군 지역 수복에 나섰다.․ 제 대대는 월 일 담양방면으로 진출하였으며 제 대대는 월 일 장성을 수복하였다1 10 14 , 2 10 18 . 제 대대는 월 일 목포를 수복하고 무안 함평을 따라 북상하면서 토벌작전을 전개하였다3 10 20 , . 국군 제 사단 연대 대대는 월 일 함평군 학교면 사거리에서 빨치산과 최초의 전투를11 20 3 10 22 치른 다음 그날 함평을 수복하였다 그 후 제 대대는 함평중학교 등에서 숙영하면서 함평지역. 3 토벌작전을 전개하였으며 일에는 제 대대와 합동으로 영광읍을 수복하였다30 2 . 대대는 월 일 학교면 사거리 함평 수복작전 후 율동마을을 수색하며 주민 일부를 빨치산3 10 22 에 협력하였다고 의심한 나머지 그들을 연행하여 살해하였다 사거리 낙천동에서는 김영철의. 집에 들어갔는데 일행 중 김영수가 대대를 인민군으로 오인하는 언행을 하자 김영수 등을 마3 을 앞 논에서 살해하였다. 또한 수복작전 당시 빨치산은 국군과 교전을 벌이면서 신광면과 대동면 등 인근지역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보초를 세웠다 전투 후 빨치산은 불갑산 방향으로 깊숙이 후퇴한 반면 강제. , 동원된 주민은 빨치산을 따라가지 않고 전투지역 인근인 학교면 월산리 송산마을을 거쳐 대동 면 나산면 방향으로 갔다 이 주민들을 추적하며 월산리로 들어간 대대는 월산리 주민 일부, . 3 를 빨치산 협력자로 간주하고 윤두식 등 마을의 청장년을 연행하여 살해하였다.․ 한편 제 대대의 다른 중대는 월 일 수호리 대등 해동마을 앞 천자봉에서 함평읍의 수산3 10 23 , 봉 방향으로 총격을 가한 후 대등마을을 수색하였다. 대대 일부 중대는 대등마을에서 명의 주민을 색출하여 살해하고 다른 일부는 해동마을 앞에3 5 , 서 일부 주민들을 살해하였다 하지만 해동마을 뒤로 들어온 대대의 일부 중대는 연행한 주민. 3 을 풀어주었다. 또한 대대는 대동면 향교리 남교마을을 수색하면서 주민 중 명의 여성을 데리고 여성동맹위, 3 3 원장을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여성 들을 연행하였다 이때 연행된 여성들은. 숲쟁이길에서 살해되었다 대대는 대동면 덕산리에서 주민 김재운도 살해하였다. 3 . 대대는 나산국민학교에 숙영한 후 월 일 나산면 월봉리 주민 명을 천주봉으로 연행하여3 10 28 7 총격을 가하였다 이 자리에서 명은 사망하였고 정창근은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6 . 한편 불갑산지역 빨치산 토벌작전을 벌이던 제 대대는 불갑산 아래인 밀재 부근 밭에서 밭일2 , 을 하다 대대를 보고 놀라서 달아나던 장장식 등을 살해하였다2 . ( 주요 규명과제별 입증사실3) 가 희생피해규모 희생자의 신원과 특징. , ․ 술조서 쪽(2006. 8. 22.), 5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