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page

제 장2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전쟁_ 625․ 177 169) 기도비닉 의 사전적 의미는 아군의 작전을 적이 모르게 준비해 실행한다는 뜻( ) .企圖秘匿 연번 이름 당시나이( ) 진술일 진술형태 소속 신분 주요 진술 세(19 ) 2. 녹취 원 부근에서 박을 하고 작전을 하였음1 . 새벽에 출동하여 불갑산 정상까지 갈 때는 아무 일이 없었는데․ 내려오다 부상을 입었음. 빨치산이 호 안에서 하늘에 대고 총을 쏘아 총구만 보여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음. 도망가는 사람들은 떼를 지어 움직였는데 민간인이었지 전투요원으로,․ 보이지는 않았음. 내려오다 부상을 당하여 민간인의 당가로 밤늦게 해보국민학교로․ 내려와 후송되었음. 3 김성순 세(19 ) 2007.12.1 3. 진술 녹취 중대7 원 빨치산 복장은 대부분 떨어진 인민군 복장에 죽창 철창을 들었고 식, 99․ 소총이나 따발총을 든 사람은 조금밖에 없었음. 빨치산은 몇백 명에 불과하여 전력은 국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였음, . ․ 전과는 민간인을 죽고 적 사살이라고 보고하였음.․ 4 김정부 세(19 ) 2008.11.1 3. 통화보고 수색 소대원 수색대장 유삼율의 연락병이었는데 불갑산작전 때는 전사자나 부상자는․ 없었음. 작전은 몇 시간 밖에 안 하고 오후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내려왔음.․ 우리가 올라갈 때 따꿍따꿍 총소리가 몇 번 나서 우리는 응사만‘ ’ 하였음. 수색소대는 적 사살 전과는 없었고 비무장 피난민만 몇 사람을․ 발견하여 데리고 내려왔음. 5 오달근 세(16 ) 2008. 9.24. 진술 녹취 학도 연맹원 중대가 음력 월 일까지 순창군 쌍치면작전 후에 불갑산작전을8 1 13․ 하였음. 문장에서 박을 하고 다음날 새벽에 올라갔는데 점심 무렵 불갑산에1․ 도착하였음. 중대를 여 뒤에서 따라갔는데 교전은 보지 못하고 도망가는8 10 m․ 피난민을 총격하는 것은 보았음. 중대 부상자와 전사자가 여 명이었는데 당가를 이용하여 문장으로6 10․ 옮겼음. 6 오정인 세(23 ) 2008. 9.22. 진술 녹취 월야 지서 경찰 불갑산 작전에는 함평경찰서와 월야지서 등을 합하여 경찰은 명50․ 정도가 참전함. 영광경찰과 함평경찰은 따로따로 불갑산에 올라갔는데 함평경찰은․ 밀재부터 작전을 하였음. 체포된 피난민을 따로 구분한 것은 아니고 군경이 데려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갔음. 부상한 경찰은 있지만 전사자는 없었으며 민간인도 많이 죽어 산․ 고랑이 하얗게 보였음. 7 김규영 세(23 ) 2008.10.1 0. 진술조서 영광 경찰서 기동 대원 국군 연대 소속 개 중대 병력이 왔었는데 개 중대는 함평 개20 3 1 , 1․ 중대는 장성 개 중대는 영광 쪽에서 들어와 작전을 하였음, 1 . 경찰 일부만이 공비와 교전하였으며 대부분의 경찰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작전을 마쳤음. 불갑산작전의 군 보고서에 적힌 사상자 여 명은 엉터리로 한‘ 1,000 ’ ․ 명을 사살하면 명으로 두 명을 사살하면 명이라는 식으로30 , 50 보고하였음. 8 임봉섭 세(20 ) 2008. 9.22. 진술 녹취 함평 경찰서 기동 대원 함평 수복 후에는 주로 서나주 쪽 전투에 참여했으므로 불갑산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음. 함평경찰서 기동대는 명 정도였는데 불갑산 빨치산과 연계를 끊기90․ 위하여 서나주 쪽 작전을 나갔는데 여 명이 매복 작전을 하였음20 . 불갑산 대보름작전은 군경이 정보만 제대로 있었어도 민간인의 피해는․ 크지 않았을 것임.